“미국이 빠진 환태평양경제동반협정(TPP)은 의미없다”던 일본 정부가 입장을 바꿔 나머지 11개국과 협상을 추진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일본의 TPP추진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이 명확해진데다, 이번주 개최되는 첫 미일 경제대화를 감안해 다자간무역틀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의 대일 양자협상 압력을 방어하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탈퇴선언 이후 공중분해 위기에 빠진 TPP와 관련해 남은 11개국과 협상을 추진키로 최근 방향을 바꿨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15일 전했다.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다음달 하순 베트남에서 각료회의를 열고 협상 진행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일본이 전략변경을 한 배경은 미국을 제외하고 TPP를 추진해도 트럼프 정부가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라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올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미국의 TPP 탈퇴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역, 성장촉진 방법을 찾기로 합의했다. 당시 공동성명에는‘일본이 기존 이니셔티브를 기초로 지역차원의 진전을 계속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TPP를 성장전략 핵심수단으로 여겨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TPP를 일단 발효시켜 미국이 향후 다자간무역시스템으로 돌아올 여지를 남겨두려 하고 있다. 또 TPP에 적극적인 국가들은 미국이 탈퇴해 좌초 직전인 현 상황을 미국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일본이 주도해 동력을 살려내길 희망하고 있다. 미국 의회 내 일각에도 일본이 미국을 대신해 아시아에서 무역자유화를 추진해달라는 목소리가 있는데다, 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강화에 대한 경계가 큰 점도 일본이 전략을 선회한 이유로 풀이된다. 다만 일본과 호주는 TPP에 긍정적이지만 비중이 높은 미국 수출시장이 제외돼 실익을 의심하는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은 설득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방향 전환은 18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방일에 따른 미일간 경제대화 스케줄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무역적자 감축을 위해 일본과 자유무역협정(FTA) 등 양자협상을 밀어붙이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으로선 TPP협상 당시 미일간 합의를 넘어서는 시장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을 대비해야 한다. 장기집권을 노리는 아베 총리는 미국을 빼고도 TPP 발효를 이끌어낸다면 외교리더십의 대표적 성과로 내세울 수 있게 된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