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인양 순간 잊혀지지 않아
올라왔으니 이젠 그저 기다릴 뿐”
따뜻한 봄 햇살이 쏟아지던 16일 오후, 바닷바람은 옆으로 누워있는 세월호와 노란 리본이 나부끼는 목포신항 펜스를 지나 미수습자 가족 대기실 앞에 앉아 있던 ‘다윤 아빠’ 허흥환(53)씨에게 닿았다. “바람이 항상 세월호 쪽에서 여기로 불어오네요.” 허씨는 배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때를 말끔히 씻어낸 세월호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꼬박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9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에게는 돌아오는 4월 16일이 큰 의미가 없다. 허씨는 “우리에게 몇 주기라는 게 있나요, (날짜) 숫자만 바뀐 거지... 우리한텐 변한 게 없어요”라고 담담히 말했다. 미수습자 권재복씨의 형이자 권혁규군의 큰아버지인 권오복(61)씨에게도 ‘3주기’라는 말은 낯설다. 권씨는 “내 동생이랑 조카를 찾으면 그제서야 의미 있는 날”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진도 체육관, 팽목항 그리고 목포신항에서 버텨온 지난 1,097일이 모두 미수습자 가족들에겐 ‘몇 번째’ 4월 16일이었을 뿐이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난 3년을 ‘사람’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허씨는 이날 오전 팽목항을 찾아 진도군민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인사를 하려고 왔어요. 그 동안 신세 져서 미안하고 가족들과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배가 올라와서 이쪽으로 옮겨온 것뿐이잖아요.” 특히 미수습자 가족들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현장 작업자들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난 3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가족들은 무엇보다도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내던 인양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허씨는 “램프에 걸려 세월호를 더 들어올리지 못하고 이걸 다시 내려놓니 마니 할 때는 정말 힘들었다”면서 “올라오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미수습자 조은화양의 어머니 이금희(48)씨는 “세월호가 보이는 순간 그 참담한 모습에 말문이 막히고 속상했다”며 “배가 쉽게 올라왔다고들 하는데, 우리가 지난 3년 동안 싸워온 걸 생각하면 절대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날 목포신항에서는 ‘추모’라는 말을 두고 미수습자 가족들과 추모행사 주최측 사이에 의견 대립이 발생하기도 했다. 허다윤 양의 엄마 박은미(47)씨는 “미수습자를 두고 추모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울먹였다. 이금희씨도 “목포신항에서만은 그 말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추모행사 주최측인 ‘세월호전남운동본부’ 관계자는 “미수습자 가족의 마음을 존중하지만, 엄밀히 말해 가족들의 허락을 받을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해 가족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목포=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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