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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역사의 우연성

입력
2017.04.1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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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우연성을 강조하는 얘기는 숱하다. 1920년 알렉산드로스 그리스 왕이 애완용 원숭이에게 물려 죽었다. 이로 인해 쿠데타로 폐위된 그의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1세가 망명에서 돌아왔다. 그는 터키와의 전쟁에 휘말렸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윈스턴 처칠은 “원숭이가 한번 깨무는 바람에 수십만 명이 죽었다”고 언급했다. 14세기에 터키의 바자제트 황제도 힘줄에 통증이 생기는 바람에 중부 유럽의 진격을 중지했다. 왕의 힘줄 통증이 여러 나라의 불행을 막았다는 것이다.

▦ 독일 통일도 동독 당 대변인의 말 실수와 이탈리아 기자의 오보로 앞당겨졌다는 얘기가 있다.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치국원 귄터 샤보프스키가 ‘외국여행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내용을 정확히 모른 채 “서독을 포함한 외국 여행을 자유화한다”고 말했다. 이에 독일어가 짧은 이탈리아 기자가 “그럼 언제부터 시행하냐”는 질문을 했고, 얼떨결에 “지금 당장”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장면은 TV에 중계됐고 방송을 본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모여들었다. 장벽은 곧 무너졌고, 독일 통일은 급속도로 진행됐다.

▦ 아시아 지역에서는 ‘가미카제’(神風)가 사례로 등장한다. 중국을 통일한 몽골은 고려와 연합군을 구성해 두 차례 일본 원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태풍이 불어 군함이 대거 침몰하면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태풍이 없었다면 일본 역사는 뒤바뀌었을 것이다. 과학저술가 마크 뷰캐넌은 ‘사회적 원자’에서 “인간 사회에서는 사소한 우연이 거대한 사건에 개입하곤 한다. 재해 전쟁 선거를 비롯한 여러 주요 사건이 사소한 사건 때문에 거의 아무 이유 없이 방향이 바뀐다”고 했다.

▦ 한반도에서 전쟁 징후가 있었던 적이 몇 차례 있었다. 1968년 1ㆍ21사태,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1999년과 2002년의 1ㆍ2차 연평해전 때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지금이 한국전쟁 이후 위험지수가 가장 높다고 한다.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이 한반도를 향하고, 북한은 6차 핵실험 징후를 보인다.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서 혹 불쏘시개가 될 사건이 발생한다면? 기우(杞憂)이길 바랄 뿐이다. 한 지인은 가족에게 “외출할 때 여권을 소지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우리의 생존을 우연에 맡겨야 하다니, 답답하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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