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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치료 받으려면 우리의 스파이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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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치료 받으려면 우리의 스파이가 돼라”

입력
2017.04.1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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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소년 아흐마드 슈비르의 방에 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이 놓여있다. 벳첼렘 웹사이트 캡처
팔레스타인 소년 아흐마드 슈비르의 방에 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이 놓여있다. 벳첼렘 웹사이트 캡처

아흐마드 슈비르는 1999년 가자지구에서 태어났다. 선천성 심장질환, 그것도 심장이 왼쪽 가슴이 아닌 한가운데 자리잡은 중증질환이었다. 슈비르는 세상의 빛을 본 지 일주일 만에 가자지구 병원에서 동예루살렘 내 이스라엘 관할 병원으로 옮겨졌다. 성장하는 동안 수없이 받아야 할 복잡한 심장수술들을 의료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가자에서 받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 그렇게 슈비르는 동예루살렘과 이스라엘 텔아비브 지역 등의 병원을 오가며 컸다.

슈비르가 수차례 수술을 견디며 17세가 된 지난해 2월. 심장판막 수술 예후를 확인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향하던 중 그와 가족은 에레츠 검문소(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사이의 검문소)에서 이스라엘 국내 정보기관 신베트에 소환 당했다. 슈비르의 모친인 아말 카멜 나예프(50)가 지난 1월 인권단체 벳첼렘에 증언한 바에 따르면 정보기관 요원들은 가족을 방으로 안내하더니, 슈비르의 상태에 대해 알고 있으며 도움을 주는 대신 그들에게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 이웃의 이름 등 가자 내부의 정보를 달라고 한 것. 가족의 첫 대답은 “평생 아들을 돌보는 일에만 헌신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였다. 목숨의 위협을 앞둔 이들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했을까.

가자지구 기반 인권단체인 알 메잔의 이쌈 유니스는 “이런 경우 환자들의 택할 수 있는 것은 최악의 선택뿐이다. 이스라엘에 협조하거나 가자에서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이 통제되고 의료시설이 열악한 팔레스타인에서 치료가 절박한 환자들과 가족이 이스라엘로부터 스파이 노릇을 강요 받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스라엘 당국이 발행한 통행증이 있어야만 검문소를 통과해 이스라엘의 병원에 접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수감자나 재판도 받지 못한 행정구금자, 성소수자, 어린이, 빈민층 등 팔레스타인인 중에서도 취약 계층이 주로 포섭 대상이 된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협박과 위협을 넘어 감금과 고문이 동반된다.

이스라엘이 스파이들에게 요구하는 정보는 일견 사소해 보일 수 있다. 맞은편 집의 빨래를 확인 하는 것부터 사진 속 이웃들의 신상을 확인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당국은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지도자 암살이나 여타 군사작전 등에 이용한다. 최근에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내 빌린, 나비살레와 같이 비폭력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마을의 어린이들을 집중 연행해 활동에 대한 정보제공을 강요하는 일이 늘었다고 한다.

문제는 간첩행위에 동의한다고 해서 주민들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중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웃과 가족을 감시하는 일에 괴로워하며 언제 신분이 폭로될지 모르는 불안과 고립감에 시달린다. 팔레스타인에서도 스파이 행위는 심각한 범죄로 간첩 활동이 발각될 경우 배신자로 낙인 찍혀 생활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법적으로 최고 사형까지 당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로 이주한다 해도 신분을 숨기고 취업도 불가능한 임시거주권을 3개월마다 갱신하며 살아야 한다. 객지에서 아무런 연고 없이 삶을 이어가야 하는 이들을 이스라엘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이렇게 이주할 수 밖에 없던 팔레스타인인이 수천명에 달할 것으로 인권단체들은 추정하고 있다.

슈비르는 이후 어떻게 됐을까. 지난해 9월 또다시 수술이 예정돼 있던 그는 줄곧 통행증을 거부당했다. 수술이 계속해서 미뤄지는 동안 신베트는 슈비르를 재소환해 이웃들의 이름과 사진 등을 보이며 간첩활동을 종용했으며, 거부할 경우 이스라엘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협박했다. 미성년자이며 밖으로 나가기도 어려워 알고 있는 것이 없다고 설명하던 그는 약12시간의 심문 끝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끝내 이스라엘 통행을 거부당한 슈비르는 올해 1월 세상을 떠났다. 의사가 돼 자신과 같은 환자들을 치료하겠다던 그의 꿈은 점령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끝내 질 수밖에 없었다.

새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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