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도(워싱턴DC)에서 고장 나면 가장 빨리 수리되는 공공시설물은 뭘까. 공식 확인된 건 아니지만, 시내 곳곳의 교통단속 카메라라는 게 정설이다. 길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카메라 한 대가 최고 연간 4,000만달러(약450억원)를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워싱턴 외곽 버지니아ㆍ메릴랜드 주에 살면서 시내로 출퇴근하는 연방정부 공무원과 직장인들이 워싱턴시 당국이 최근 공개한 한 통계자료에 분노하고 있다. 2016년 워싱턴 일대 145대 단속카메라가 벌금으로 벌어들인 돈이 1억9,000만달러(2,120억원)로, 전년(1억1,700만달러ㆍ1,300억원) 대비 70%나 폭증했기 때문이다.
워싱턴 통근자들이 분노하는 건 단속카메라가 사고방지, 보행자 보호 등 본연의 목적 대신 철저히 시민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설치됐다는 점이다. 조지워싱턴대 공공정책학과 데이빗 브루노리 교수는 “벌금 상위 10개 카메라를 분석한 결과, 모두 시 외곽 통근자들의 출퇴근길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설치 6개월만에 2,000만달러의 과속ㆍ신호위반 수입을 낸 카메라는 시 외곽 남동쪽 메릴랜드로 빠지는 캐닐워스 애비뉴 교차로에 설치되어 있다. 워싱턴 남서쪽 외곽 버지니아로 통한 I-66 길목 지하도로 카메라도 지난해 1,181만달러(13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상위 10개 카메라가 거둬들인 벌금은 전체의 60%를 넘는 1억100만달러에 달한다.
브루노리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시 당국이 수입을 늘리는 것은 아주 나쁜 일”이라고 주장했다. 65만명 시민과 기업(법인세 8.25%)에 대해서는 세금을 대폭 내려주는 선심 정책을 펴는 워싱턴이 그에 따른 세수부족을 통근자들을 겨냥한 함정 카메라로 벌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버지니아ㆍ메릴랜드 통근자들이 시장을 뽑는 유권자가 아닌 만큼 워싱턴 당국은 이들 비난은 본체만체하고 ‘수탈 정책’의 강도를 높이겠다는 입장으로 향후 5년간 8억3,700만달러를 교통단속에 따른 벌금으로 거둬들인다는 계획이다. 또 시내에서 제한속도보다 시속 25마일(약 40㎞) 이상 과속할 경우 벌금을 기본 300달러에서 500달러로 인상하고, 신호위반ㆍ보행자ㆍ긴급차량 양보 규정을 어길 경우에도 벌금을 두 배 가량 더 부과할 방침이다.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에서 워싱턴으로 출퇴근하는 존 티코프 씨는 “올 들어 주차요금까지 인상됐다”며 “힘들고 시간이 걸려도 지하철을 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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