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 <43> 화력발전소로 몸살 앓는 충남 서해안
석탄화력발전소 57기 중 29기가
충남 태안ㆍ당진ㆍ보령ㆍ서천에 밀집
11일 오전 충남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 당진석탄화력발전소 굴뚝은 진한 연기를 계속 토해 내고 있었다. 바로 뒤 석탄화력발전소(당진에코파워) 건립 예정부지에는 ‘공익사업 예정부지로 사전 동의 없는 자산침해 행위를 하면 법적 책임과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문이 서 있었다. 이 곳에 건립될 화력발전시설은 2기로, 현재 가동 중인 당진화력(10기·6,040㎿)까지 더하면 석탄을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시설이 한 곳에 12기나 돌아가게 된다.
교로리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주민 A(44)씨는 “바람이 많이 불면 야외 테이블에 화력발전소 야적장에서 날아온 새카만 먼지가 쌓여 아무리 닦아 내도 소용 없다. 새카만 먼지를 보면 내 속도 새카맣게 탄다”며 “화력발전소를 더 건립하는 건 안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교로리에는 다른 지역보다 암 환자가 많다는 말이 파다하다. 아토피와 비염, 기관지염으로 고생하는 아이들도 많다. 전부 다 (당진화력) 발전소 때문이라고 주민들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8기(4,000㎿)의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 되고 있는 충남 보령시 주교면 고정마을 주민들도 당진 교로리 주민들과 같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이 마을 주민 B(56)씨는 “먼지 때문에 빨래를 널지 못하고, 일 년 내내 문을 닫고 지내야 할 정도”라며 “내 집에서 감옥살이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푸념했다.
보령화력 측은 오는 7월 설비용량 1,000㎿ 규모의 신보령화력 2기 완공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령화력에서 나오는 먼지가 주민들의 암 발생 원인이라는 명확한 조사결과 등의 근거가 없다 보니 주민들은 답답한 가슴만 치고 있다.
충남 서해안 주민들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내뿜는 유해 먼지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정부는 지속적으로 화력발전 증설 허가를 내 주고 있어 주민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13일 충남도에 따르면 현재 태안과 당진, 보령, 서천 등 4개 시·군에서 총 29기(시설용량 1만5,310만㎿)의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전국에서 가동 중인 석탄화력발전소(57기)의 절반 이상이 충남에 있는 것이다.
가스ㆍ먼지 등 유해물질 다량 배출
다른 지역보다 암 환자 많아
10기 가동 당진에 2기 추가 예정
충남도ㆍ주민들 재검토 요구에도
정부는 “7년 전 결정” 강행 의지
화력발전소가 밀집해 있다 보니 해당 지역의 오염도를 확인하는 각종 조사 결과 충남은 상위권에서 늘 빠지지 않고 있다. 환경부의 2013년 기준 시·군·구별 대기오염물 배출량조사(2013년 기준)를 보면 당진군의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압도적으로 많았다. 미세먼지도 포항 남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아 전국에서 대기오염물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의 2016년 같은 조사 결과에선 대기오염 다량 배출 사업장 소재지 상위 5곳이 모두 화력발전소가 있는 지역이었다. 이 가운데 충남에선 태안(2위), 보령(3위), 당진(4위) 등 3곳이 포함됐다.
윤여명 충남도 에너지전환팀장은 “충남에서 석탄화력발전소의 유해 먼지를 내뿜으며 생산한 전력의 50% 이상을 수도권으로 보내고 있다. 먼지도 모자라 전력 공급을 위한 송전선과 송전탑까지 설치하면서 이중 삼중으로 피해를 감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는 이미 10기가 가동 중인 당진에 2기(에코파워·시설용량 1,160㎿)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일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전원개발사업추진심의위가 당진에코파워 실시계획을 가결했다. 가결 사실을 뒤늦게 안 충남도와 당진시가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에코파워 예정지 바로 옆에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전국적 관광지인 왜목마을이 있고, 마리나 항만까지 계획돼 있다며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당진시 등 23개 기초단체가 참여한 ‘에너지정책 전환을 위한 지방정부협의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거듭 촉구했지만 산자부는 증설 방침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다.
산자부는 서천에도 화력발전을 증설한다. 산자부는 기존의 2기를 폐쇄하는 대신 1기를 설치한다는 논리지만 사실상 증설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실제 폐쇄하는 시설의 총 용량은 400㎿(2기)인 반면, 신설하는 발전소 1기의 총 용량은 1,000㎿이다.
정부가 화력발전 증설을 강행할 수 있는 것은 해당 지자체와 주민들이 결정과정에 사실상 아무 영향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충남도 고일환 기후환경정책과장은 “전원개발법에는 해당 기초단체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고만 돼 있다. 실제 의결과정에 참여하거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아무 근거도, 권한도 없다”고 지적했다.
당진환경운동연합 유종준 사무국장은 “당진에서 6가 크롬 등 발암물질이 나온 것은 대규모 오염물질 배출시설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더 이상 산업계의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이윤추구를 위해 주민의 건강권과 생존권을 희생시키는 정책은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산자부 관계자는 “현재 추진 중인 석탄화력발전 증설은 이미 7년 전 5차 전력계획 수급안에서 결정한 사안”이라며 “당진의 경우 에코파워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이 당진 전체 화력발전의 4% 정도에 불과한 만큼 기존 당진화력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의 50%를 감축하면 전체적으로는 크게 오염물질을 저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당진=최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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