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국가가 대신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무를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잇달아 발의됐다.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는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처럼 국민연금도 지급 보장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두고 다시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의 책무를 규정한 국민연금법 제3조에서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는 부분을 '급여의 안정적·지속적인 지급을 보장한다'로 고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남 의원은 “국민연금공단이 정권의 압력을 받고 기금 손실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했다는 의혹 때문에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며 “불신 해소를 위해서는 기금이 고갈되어도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같은 당 정춘숙 의원도 현행법 제3조에 ‘이 법에 따른 연금급여의 지급에 필요한 비용을 국민연금 재정으로 충당할 수 없는 경우에는 국가가 이를 부담한다’는 조항을 추가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은 국민연금 사업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관장하도록 하고 실제 사업은 국민연금공단에 위탁해 국민연금에 대한 책임이 궁극적으로 국가에 있음을 명시한다. 그러나 급여 지급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만에 하나 국민연금이 고갈돼 미지급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국가가 이를 대신 지급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은 고갈 시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게 돼 있다. 따라서 연금을 줄 돈이 부족해지더라도 정부가 의무적으로 세금을 동원해 부족분을 메워준다.
공무원에게만 특혜를 주고 일반 국민은 차별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이는 적잖은 가입자들로 하여금 국민연금에 불신을 품게 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평균수명 연장과 저출산ㆍ고령화 심화로 연금 받을 사람은 늘고, 보험료 낼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어 불신이 더 커진다. 이와 관련,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장기재정전망을 통해 국민연금 적립금이 2058년에는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도 2060년을 기금 고갈 연도로 보고 있다.
국가의 지급보장 의무를 명시하는 법 개정안은 과거에도 몇 차례 발의됐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기획재정부 등 재정당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국가의 잠재적 부채가 불어날지 모른다는 이유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가부채(1,433조1,000억원)의 절반 이상이 공무원ㆍ군인연금의 국가 지급 보장에서 비롯한 연금충당부채(752조6,000억원)다. 국민연금에도 국가의 지급 보장 의무를 넣으면 이런 부채가 훨씬 더 커질 수 있어 국가 신인도 하락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정부 관계자는 “연금 지급을 못하는 상황이 오면 어차피 정부가 국민의 압력을 못 이겨 세금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는데, 굳이 지금부터 보장 의무를 법에 넣어 국가부채를 늘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논란 끝에 과거의 법 개정 시도는 2013년 ‘국가가 안정적·지속적 지급에 필요한 시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문구가 국민연금법에 담기는 정도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와 시민단체 등은 이 조항이 국민연금 재원이 부족할 때 국가가 보전해줘야 한다는 의무규정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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