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성향 유지하며 캐스팅보트 행사” 관측 속
오십줄 편입한 ‘60년대생-80년대 학번’ 속내 주목
다음달 9일 치러지는 19대 대선은 과거 선거 판도를 좌우했던 지역 대결구도가 약화되면서 연령ㆍ세대 대결구도가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관련기사). 특히 전통적으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40대와 더불어 이번 대선에선 50대 표심이 승부의 향방을 가를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정말 그럴까.
386세대, 50대에 들어서다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맞붙었던 2012년 18대 대선에서 50대는 보수 진영 후보에 확연히 기운 모습을 보였다. 선거 직후 방송3사가 발표한 합동 출구조사 결과에서 50대는 박근혜 후보에 62.5%, 문재인 후보에 37.4%의 표를 각각 던졌다. 진영 간 투표율 차이가 1.7배에 달한다. 60대 이상의 선배 세대보다는 표 쏠림이 덜하지만 50대를 ‘보수 표밭’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이는 최근 선거일수록 세대에 따른 투표 성향이 양극화하는 추세와 궤를 같이 한다(▶관련기사).
그럼에도 지금의 50대가 5년 전의 50대와 달리 ‘박빙의 승부처’가 될 것이라 관측하는 근거는 다름 아닌 ‘386세대’다.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니며 민주화 운동의 복판에 섰던, 그래서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 세대가 대거 50대로 편입한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박시영 윈지코리아컨설팅 부대표는 “최근 조사를 보면 50대 안에서 정치 성향이 상당히 다르다”며 “과거 ‘전대협 세대’인 1964, 65년 이후 출생자들이 편입된 50대 전반은 대체로 진보 성향에 가깝고, 50대 후반은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한 번 진보세대는 영원한 진보세대인가
이런 관측이 정확하다면 기존 판세 분석에서 별다른 구분 없이 혼용됐던 ‘세대 효과’와 ‘연령 효과’가 이번 대선의 50대 유권자 층에선 확연히 갈리는 셈이다.
연령 효과는 유권자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회ㆍ정치적으로 보수적 태도를 갖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지지하는 정당과 강한 일체감을 갖고 투표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학계에선 물질적 부의 축적, 사회 경험을 통한 권위주의적 성향 획득 등을 요인으로 든다.
반면 세대 효과는 자연 연령과 별개로 한 세대가 공유하는 가치와 태도에서 비롯한다. 각 세대가 겪은 독특한 사회, 문화, 정치적 경험이 그 세대 특유의 정치적 성향을 빚고 구성원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1930년대 초반 젊은 시절을 보낸 미국 ‘뉴딜 세대’의 친(親)민주당적 성향이나 1960, 70년대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세대의 공통적 정치 성향 등이 세대 효과를 지지하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의 386세대가 민주화 경험 등을 통해 정치ㆍ사회적으로 체화한 ‘세대 감각’ 역시 생물학적 노화에 따른 보수화 흐름을 거스를 만큼 강력한 것일까. 이러한 세대 효과가 5월 장미대선의 판도에 영향을 미치게 될까. 386세대의 투표 성향과 이념적 정체성이 세월을 거치며 어떤 양상으로 변화했는지를 살피면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 조사ㆍ통계 전문 학술기관인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가 대선 직후마다 작성해온 ‘유권자 의식조사’ 통계에서 ▦386세대(1960~69년생) ▦유신 세대(1952~59년생) ▦산업화 세대(1942~51년생)의 데이터를 추출해 386세대의 정치 성향이 어떤 변화 양상을 보였는지, 다른 선배 세대의 변화 양상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봤다. 15대 대선(1997년)부터 18대 대선(2012년)까지 실시된 네 차례 조사에 공통적으로 포함된 설문 항목 중 ▦투표 후보 ▦이념 성향 ▦선호 정당을 골라 답변 결과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투표 후보와 선호 정당은 당시 판세에 따라 보수-진보 진영으로 각각 분류했다. 이념 성향은 15, 16대 대선 조사에선 5단계 척도(매우 보수-약간 보수-중도-약간 진보-매우 진보), 16, 17대 대선 조사에선 11단계 척도(0점(매우 진보)~10점(매우 보수)) 방식으로 조사됐는데, 분석 편의를 위해 모두 보수-중도-진보로 단순화했다.
민주화세대도 결국 ‘나이’를 먹더라
분석 결과 네 번의 대선이 치러진 20년 동안 386세대 역시 뚜렷한 보수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 출마 후보 중 이념 성향이 보수와 진보로 뚜렷이 분류되는 이들을 고른 뒤 386세대가 이들 ‘보수 후보군’과 ‘진보 후보군’에 투표한 비율을 각각 조사한 결과, 15, 16대 대선에선 진보 후보들에게 더 많은 표가 갔지만 17대 대선을 기점으로 보수 후보군 우위로 투표율이 역전됐다.
이념 성향을 묻는 질문엔 15대 대선 조사 땐 41.4% 대 38.1%, 16대 대선 땐 47.6% 대 21.5%로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답변한 응답자 비율이 높았지만, 17대와 18대 대선에선 이 비율이 각각 13.6% 대 22.8%, 7.5% 대 32.4%로 스스로를 보수 성향이라 말한 응답자가 더 많아졌다. 다만 스스로를 중도 성향이라고 답한 386세대 유권자가 17대 대선을 기점으로 급증했다. 이때부터 조사 방식이 5개 척도에서 11개 척도로 늘어나면서 각 이념 간 중간 영역 선택지가 늘어난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지지 정당의 경우 진보 성향 정당을 선호한다는 응답률은 20% 후반~30% 전반대로 답보한 반면, 보수 정당 선호 응답률은 15대 14.9%, 16대 23.7%, 17대 45.4%로 급등했고 18대 대선(41.9%) 조사 때도 40%대를 기록했다.
386세대, 그래도 ‘야성’은 살아있다
1997년 15대 대선 당시 20, 30대 청년이었던 386세대는 2012년 18대 대선 땐 40, 50대 중장년이 됐고, 19대 대선이 치러지는 올해는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에 이르는 연령대에 편입됐다. 386세대가 시간 흐름에 따라 정치적으로 보수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들 세대에도 ‘연령 효과’가 확실히 작용하고 있다는 징표다.
그렇다면 386세대에 미치고 있는 연령 효과의 강도는 그 선배 세대들에 비해 어떨까. 먼저 대선별로 이들 세대의 보수 성향 후보군 투표율을 살펴보면 산업화 세대와 유신 세대는 15대 대선 이래 줄곧 보수 후보 투표율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 386세대는 보수 후보 투표율이 급등한 17대 대선까지는 선배 세대의 패턴을 따르지만 18대 대선 때는 그 비율이 10%포인트 가까이 감소(65.7→56.3%)했다.
연령 및 이념성향과 무관하게 유권자 계층 전반에서 이명박 후보가 우위를 점하는 이례적 결과를 보인 17대 대선을 제외하고, 15대와 18대 대선의 세대별 보수 후보 투표율을 잇는 그래프를 작성해 보면 386세대의 직선 기울기가 가장 완만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보수 후보에 대한 투표율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의미다.
17, 18대 대선에서 이들 세대의 이념 성향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자신을 진보라고 규정하는 이들이 줄었다는 공통적 특성을 보인다. 주목할 점은 세대 내 중도 성향 비율이다. 386세대 내 중도 비율은 17대 63.6%, 18대 60.1%로, 유신세대의 55.3%-45.1%, 산업화세대의 47.7%-44.8%보다 크다. 특히 유신세대는 17대 대선부터 18대 대선까지 5년 동안 세대 내 중도층 비율이 10%포인트 이상 줄어들면서 보수층이 두 배 가까이 확대(25.9→49.3%)되는 변화를 보였지만, 386세대는 60%가 여전히 중도층을 이루고 있다. 386세대의 다수가 정치적 중립지대에서 상황에 맞춰 유연한 정치적 결정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스윙보터 성향은 386세대 중 특정 정당을 선호하지 않는 무당파 비중이 선배 세대보다 높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8대 대선 조사에서 386세대 유권자 중 25.3%가 ‘좋아하는 정당이 없다’고 응답, 이 비율이 각각 15.1%인 선배 세대보다 10%포인트가량 높았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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