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또다시 기각됐다. 검찰은 영장 재청구를 검토한다는 입장이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를 불구속 기소하면 제대로 된 처벌이 어려워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셈이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까지 구속된 마당에 이를 막았어야 할 주무 책임자가 법망을 빠져나간 것을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서울중앙지법 영장판사는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등 우 전 수석의 범죄 성립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범죄 혐의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법이 정하고 있는 그대로 공무원 신분으로 직권을 남용해야 한다. 민정수석의 업무가 광범위하다 보니 합당한 ‘권한 행사’와 ‘권한 남용’을 가르는 경계가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박영수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검찰로서는 더 치밀하고 꼼꼼히 수사해 혐의를 뚜렷이 드러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영장 기각은 검찰 수사의 실패라고 보아 무방하다.
이번 사태는 이미 8개월 전 검찰의 초기 수사과정에서 예고된 것과 다름없다. 지난해 8월 우 전 수석의 연수원 동기인 윤갑근 대구고검장에게 특별수사팀을 맡긴 것부터가 부실 수사의 시작이었다. 검찰 사무실에서 팔짱을 끼고 웃으면서 수사관들과 대화를 나눈 ‘황제 소환’이 좋은 예이다. 특별수사팀까지 꾸려놓고도 결국 수사 발표조차 못하고 문닫은 사례는 검찰의 치욕으로 남을 만하다.
우 전 수석 사건을 넘겨받은 특검팀 수사에서도 검찰의 고질적인 ‘제 식구 감싸기’와 ‘조직 보호 논리’는 그대로 작동했다. 조사를 후순위로 미뤄 우 전 수석 소환은 특검 수사 종료 직전에야 이뤄졌다.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친정’인 검찰과 법무부에 대한 수사를 꺼려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우 전 수석 수사의 전 과정을 보면 검찰 고위층과의 연루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시점에 김수남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은 우 전 수석과 수시로 통화했고, 검찰사건 수사를 지휘ㆍ관장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은 거의 매일 연락을 취했다. 공정한 수사를 위해서는 수뇌부 조사나 외부 감찰에라도 나섰어야 하지만 그냥 덮었다. 대선 후보들까지 하나같이 ‘사법 정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판한 게 당연하다. 특별검사를 다시 임명해서라도 의혹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검찰의 허술한 수사가 검찰 개혁의 당위성만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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