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ㆍ친선 외교 전문가 포진
북한이 우리 정부로 치면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에서 19년 만에 외교위원회를 부활시키면서 그 의도를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거세고 미국의 선제공격설까지 나도는 상황에서 ‘강대강’으로 맞서기 보다는 호흡조절에 들어갔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개방과 친선에 주력해온 외교 베테랑들이 외교위원으로 대거 포진돼 북한이 향후 대화 국면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이 11일 발표한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 국제 담당 부위원장이다. 리수용은 30년간 제네바를 비롯한 유럽에서 활동한 베테랑 외교관으로, 향후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친선외교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리수용은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시절 후견인 역할을 했던 인연으로 김정은 체제에서 승승장구, 지난해 당 국제담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에 임명돼 외교 1인자로 올라섰다.
외교위원 중 가장 먼저 호명된 리룡남 내각 부총리는 무역성에서 잔뼈가 굵은 대외 경협전문가다. 2012년부터 2년간 대외경제상을 맡았고 지난해 6월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내각 부총리에 올랐다. 북한이 현재 유엔의 대북 제재 아래에선 실현되기 어렵지만 대화 모드가 조성되면 언제든지 경협 활성화에 나설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리룡남 다음으로 호명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은 2006년부터 남북 장성급회담, 군사실무회담 등에 나섰고 2010년 이후로는 남북 개성공단 통행 문제를 협의 할 때 북측 단장을 맡았다. 지난해 대남담당 기구인 조평통이 설치되며 위원장으로 임명된 남북회담 전문가로, 남북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면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통인 김계관 외무성 1부장의 기용도 눈길을 끈다. 김계관은 6자 회담 북측 수석대표를 역임했으며, 9ㆍ19 공동성명(2005년)과 10ㆍ3합의(2007년) 등을 이끌어낸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향후 핵 협상을 비롯한 대미외교의 사령탑 역할을 할 전망이다.
외교위원에 포함된 김정숙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위원장은 민간외교 분야 수장으로, 미수교국의 정부나 민간인을 상대로 외교활동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노동자단체인 조선직업총동맹의 부위원장(김동선)과 청년동맹 비서(정영원)도 외교위원에 포함됐다.
북한이 일단 대화채널을 구축하며 신중 모드로 돌아섰지만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 등 명절이 대거 포진한 이달에 핵실험 등 도발에 나설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관측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특별한 대외 메시지를 발신하지 않고 이 시점에 외교위원회를 복원시킨 것은 김정은 정권이 현 상황을 관망하며 향후 한미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라며 “다만 군사적 긴장감을 극도로 끌고 간 후 대화에 나섰던 전례를 볼 때 북한이 이달 중 무력 도발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고 내다봤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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