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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달마, 오뚝이에서 수맥차단까지

입력
2017.04.1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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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한국인이라면 ‘달마도’나 달마가 그려진 도자기를 한두 번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달마도’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수록된 김명국의 17세기 작품이었다. 이 ‘달마도’는 덥수룩한 이방인의 표현 속에 깊은 사유가 묻어나는 그림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후에 보게 된 ‘달마도’들은 한결같이 부리부리한 눈에 어찌 보면 위압적이고 또 해학적이기까지 한, 한마디로 대충 그린 듯한 그림들이었다.

이러한 우둘투둘함이 당나라 때 왕유(王維)를 시원으로 하는 남종 문인화(南宗 文人畵)의 표현이었다는 점은 후일 동양미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즉 직업화가가 아닌 문인들이 자신의 정신경계를 드러내기 위해 그린 것이 문인화이며, 그 대표적인 것이 ‘달마도’인 것이다. 문인화의 핵심은 공필화(工筆畵)에서와 같은 기교가 아닌 그 속을 흐르는 ‘공부의 아취와 문자의 향기(書卷氣文字香)’에 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그림에 흐르는 품격, 즉 정신을 더 우선시하기 때문에 문인화를 더 높게 친다. 이는 서양화의 전통과는 다른 동아시아만의 관점인데, 여기에는 ‘그림을 그리는 붓과 글씨를 쓰는 붓이 동일하며 한자의 기원이 상형문자인 그림에서 연유한 것에 기인한다. 이를 당나라의 장언원(張彦遠)은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서 ‘서화동원書畵同源’ 즉 글씨와 그림은 같은 근원에서 비롯한다고 표현하였다.

달마는 본래 남인도의 왕자 출신 승려로 위진 남북조시대에 중국으로 건너와 선(禪)이라는 불교의 명상 흐름을 전파한 인물이다. 이 달마의 가르침이 당나라에 들어와 혜능에 의해서 완성되는 선불교이며, 이는 동아시아 불교의 대표적인 가르침으로 자리 잡게 된다.

선불교는 귀족문화를 벗어난 민중적인 불교였고, 이의 유행은 달마가 민간에서까지 신격화되는 양상을 초래한다. 여기에 그림 속에 정신을 응축해 넣는 문인화적인 요소가 더해지면서 ‘달마도’는 신비한 그림으로 변모한다. 이의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우리나라에서 ‘달마도’가 수맥차단용으로 각광받는 모습이 아닐까? 명상불교의 기원을 확립한 분을 그린 성화가 수맥차단에 효과가 있다니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용의 그림이 역신을 물리친다는 신화적인 변모가 ‘달마도’에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달마도’에 대한 믿음은 단순히 수맥차단에만 그치지 않는다. ‘달마도’는 벽사 즉 모든 삿된 것을 물리치는 수호신과 같은 역할로도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반드시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식당이나 거실에 ‘달마도’를 걸어두는 모습이 종종 목도되곤 하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달마가 일본에서는 오뚝이로 재해석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오뚝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일본불교에서 만들어진 달마의 모습이라는 것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다. 달마는 중국으로 건너와 숭산 소림사 위쪽의 동굴에서 9년 동안 눕지도 않고 벽을 마주한 채 명상만 했다. 바로 이 이미지를 300년 전 일본에서 형상화한 것이 바로 오뚝이이다.

불교가 주류종교인 일본에서 오뚝이 달마를 보는 것은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뚝이 달마에는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은 한 해가 시작되는 정초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의지를 다질 때 오뚝이 달마를 산다. 그리고 소망을 기원하며 왼쪽 눈을 그려 넣는다. 그런 뒤 소원이 성취되면 나머지 오른쪽 눈을 마저 그린다. 즉 화룡점정을 하면서, 넘어지지 않는 오뚝이 달마를 통해 원하는 바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달마가 동아시아로 와서 얼마나 애달픈 질곡의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민중을 끌어안은 달마의 저력이 아닐까!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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