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가을, 번번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2017 F/W 헤라서울패션위크가 마무리되었다. 반 발쯤 앞서 준비할 수 있는 통찰과 용기는 차곡차곡 쌓여온 매일의 일상이 건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에게 우리 제품을 발표하는 자리가 주는 긴장감과 부담은 늘 처음처럼 무겁다. 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보니 어느새 벚꽃 흩날리는 4월이 되었다. 누군가 말했다. 4월은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고.
서울패션위크는 예전에 비해 수준 높은 컬렉션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디자이너가 쇼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되었다. 하지만 대중화됨으로써 집중도와 전문성이 조금은 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서울패션위크가 유명인들의 행사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들이 각자 책임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비즈니스는 부수적인 것이 되어야지 주가 되어선 안 된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몰려도 쇼에 큰 감흥을 받지 못해 의상을 주문하는 바이어 수가 줄어든다면 디자이너에게 치명적이지 않겠는가.
서울패션위크를 통해 실력 있는 신진 디자이너들이 해외 바이어들의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능력 있는 신인이 많이 나와서 우리의 경쟁력과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지만, 반짝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그치고 말 때는 안타깝다. 신진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피나는 노력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숙련되고 시간이 쌓이게 되면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긴다. 이는 아이덴티티와 스토리가 견고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작은 반복의 힘을 믿는다. 끊임없이 실력을 갈고 닦아서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옷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작업이다. 내 옷을 누군가 고를 때, 거기엔 그의 생각과 취향, 고민까지 스며든다. 만든 사람과 입는 사람이 교감하는 어떤 지점, 그곳에서 브랜드의 가치가 만들어진다. 옷이란 무엇인가, 패션이란 무엇인가. 쇼를 준비할 때마다 스스로 묻고 답한다. 나라면 이 옷을 입을까, 이 가격에 입을 가치가 있을까를 늘 고민하며 디자인을 한다. 쇼를 멋지게 하는 것도 좋지만 대중이 생활 속에서 편하게, 예쁘게 입을 수 있는 옷이어야 한다.
패션은 생활이고, 사회의 현상이다. 생활에서 패션이 오는 것이다. 주변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 사람을 만나면서도, 가만히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디자인을 생각한다. 디자이너나 패션 관계자만으로는 한국 패션이 발전하지 못한다. 우리 생활이 풍요로워질 때, 패션에 대한 수준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패션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패션은 사치라는 생각을 버리고 즐겨야 한다. 그것은 ‘생활을 즐겨라’ 와 같은 이야기다. 음식도 다양하게 먹어본 사람이 미식가가 되듯이, 다채로운 색상과 디자인을 보면서 다양하게 경험해야 한다. 옷을 잘 입는 것만이 패션이 아니다. 소소하게 휴대폰 케이스를 고르는 것, 그날 기분에 따라 넥타이를 바꿔 매는 것, 음식을 그릇에 예쁘게 담아내는 것도 생활 속 패션이다. 패션이 생활 한가운데 있으면 삶이 풍요로워지고, 즐거워진다. 생활에서 디자인을 찾아내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재미를 찾다 보면 자연스레 색채와 디자인 감각이 좋아진다. 같은 초록이라 해도 햇빛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작은 빛깔이 층층이 쌓여 큰 빛깔을 이루고 하늘의 빛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순환의 구조, 바로 자연이다. 자연 속의 색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패션과 친밀해지기에 충분하다.
일상 속에서 패션과 가까워지는 시민들이 늘어갈수록 서울패션위크도 다른 도시의 패션위크에서 느낄 수 없는 은근한 세련미와 고유의 분위기가 만들어지리라 믿는다. 새로이 꽃을 피우는 후배 디자이너들과 패션을 사랑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서울패션위크로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창문을 열기 전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해야 하는 요즘, 허탈하게 툭툭 일상이 흐트러지곤 한다. 이 어수선한 마음의 고민과 짐들을 잠시 내려놓고 눈을 돌려 푸른 바람 한 자락에 꽃잎이 떨어지는 이 봄을 느껴라. '색의 잔치’ 가 펼쳐지는 이 봄을 누려라.
지춘희 디자이너(미스지컬렉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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