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1만5000마리 매몰하고
5개월간 수입 없이 버텼는데
재입식 비용 1억이나 더 들어
살처분 보상금 현실화해야”
당국 승인절차도 까다로워져
재입식 농가 아직 1곳도 없어
12일 오전 경기 양주시의 한 양계농장. 농장 입구에 걸린 ‘출입금지’ 푯말 뒤로 150평은 됨직한 텅 빈 닭장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닭 수만마리가 북적이던 이곳은 지난해 11월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으로 닭 1만5,000마리를 몽땅 살처분 매몰해 지금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AI이동제한 해제조치에 따라 기대했던 재입식(入殖 ㆍ가축을 외부에서 들여와 기르는 일)이 가능해졌지만, 농장주 장모(55)씨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산란계(알 낳는 닭)를 다시 들여와 길러야 하는데, 산란계가 대량 살처분되면서 값이 뛰어 재입식 비용부담이 두 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장씨는 “5개월 동안 수입 한 푼 없이 카드 돌려막기로 생활하며 버텼는데, 입식비용만 1억원 이상 더 들어가게 돼 괴롭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육계농가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경기 포천에서 육계농장을 운영하는 김모(61)씨는 자신의 농장이 AI방역대(3㎞)에 들어가 3달 동안 입식이 막혀 일손을 놔야 했다.
그는 “AI사태 이전의 사육규모를 갖추려면 이젠 두 배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며 “정부의 AI보상금은 살처분 당시 시세를 기준으로 해 결국 농가가 모든 부담을 져야 할 처지”라고 한탄했다.
AI가 수그러들면서 경기도가 14일 가금류 이동제한을 해제할 예정에 있는 등 AI가 단계적으로 해제되고 있지만, 오히려 농가들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입식용 병아리와 산란계 값이 두 배 이상 오른 데다 재입식 절차도 까다로워진 탓이다.
경기지역 양계협회에 따르면 병아리값은 AI사태 이전 1마리당 500원 안팎이었으나 지금은 800원 이상으로 올랐다. 산란계(70일 중추 기준)도 1마리당 6,500원에서 1만2,0000원까지 급등했다. 이마저도 공급물량이 부족해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층 강화된 재입식 절차도 부담스럽다. AI 살처분 농장이 재입식을 하려면 소독상태 등 청결상태를 해당 지자체와 검역본부에서 확인을 받고 이후 닭을 3주간 키우며 AI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입식시험을 거쳐야 가능하다. 검역본부 승인 등의 절차가 추가돼 1~2주는 더 걸리게 된 것이다.
재입식 비용이 늘고 절차도 까다로워지면서 AI로 피해를 본 전국 923개 농장 가운데 아직 재입식 농가는 단 한 곳도 없다. 입식시험 승인을 받은 농가만 전국적으로 10여 곳에 불과하다.
농가들은 정부의 AI살처분 보상금에 농가들이 재기하는 재입식 비용이 반영 안 돼 비현실적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가격 폭등으로 농가들이 재입식에 어려움이 큰 것은 사실”이라며“하지만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한 현상이라 도 차원의 지원은 힘들다”고 말했다.
이번 AI사태로 경기지역 123개 농가에서 AI가 발생해 모두 206개 농가의 닭과 오리 등 가금류 1,588만 마리가 땅속에 묻혔다. 전국적으로는 3,787만 마리의 가금류가 매몰 처분됐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