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무더위에 시작해 봄 꽃이 필 때 끝났다. 8일 종방까지 61부작 대장정이었다. 마지막 촬영 전날 밤 배우 유선(41)은 딸 아이를 재워 놓고 혼자서 눈이 빨개지도록 울었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종방연에서 인기상, 커플상, 공로상 등을 수여하는 깜짝 이벤트도 준비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선은 SBS 드라마 ‘우리 갑순이’를 “오래된 연인”이라고 했다. 목소리에 애틋함이 듬뿍 실려 있었다.
유선이 연기한 재순은 고난의 아이콘이었다. 조건만 맞춘 재혼과 그로 인한 갈등, 두 번째 이혼과 첫 남편과의 재결합, 또 다시 파혼, 독한 홀로서기, 두 번째 남편 금식(최대철)과의 재회까지 삶이 파란만장했다. 재순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시청자들에겐 인내가 필요했다. 유선은 “‘재순의 ‘사이다’ 한방을 기다린다’는 댓글을 볼 때마다 ‘나도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었다”며 웃었다.
“재순의 인생이 풀릴 듯 안 풀리고, 일이 될 만하면 꼬이곤 했죠. 상황상 고립돼 있으니 연기하면서 답답하기도 했어요. 어디다 털어놓지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보희 선배님이 말씀하셨어요. ‘사실 배우들 중에 재순이가 가장 힘들 거야’라고.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몰라요.”
재혼 가정을 꾸렸다가 이혼한 뒤에야 시작된 재순과 금식의 연애는 ‘고구마 밭’ 같던 드라마에 숨통을 틔웠다. 순종적이었던 재순은 적극적으로 변했고, 차갑던 금식은 다정해졌다. 연기하는 배우들도,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심쿵’ 했다. ‘우리 갑순이’는 ‘우리 재순이’라 불렸다.
“작품 안에 ‘짝꿍’이 있다는 게 배우에게 얼마나 귀한 기회인지 몰라요. 사실 주인공 외의 인물은 누구의 친구, 고모, 이웃 정도에 머무르잖아요. 역할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짝꿍이 있으면 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져요. ‘우리 갑순이’는 모든 인물이 짝을 이루죠. 문영남 작가님이 캐릭터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배우를 배려해주신 거예요.”
최대철은 최고의 짝꿍이었다. 배우들 사이에서 반장과 부반장도 함께 맡았다. 유선은 “대철씨가 워낙 인성이 좋고 성실해서 의지가 됐다”고 말했다.
드라마를 행복하게 마무리한 덕분에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일과 생활의 균형도 잘 잡혔다. 연기 활동에 탄력이 붙었다. 네 살 딸과 잠시 여행을 다녀온 뒤 곧장 새 작품을 준비할 예정이다. 미국드라마를 리메이크하는 tvN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수사팀의 정보 수집을 담당한 천재 해커로 분한다. 유선은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그 인물로서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고 했다.
“올해는 작품 안에서의 역할 비중보다는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두고 해요. 제가 가진 스펙트럼을 확인해 보고 싶어요. 배우와 역할이 잘 어우러질 때 ‘맞춤옷 같다’고 하잖아요. 여러 가지 옷을 입어보면서 저에게 딱 맞는 옷을 찾고 싶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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