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권자 집회 닷새 앞으로
국민연금 “4월 회사채 석달 연기”
산은 “만기연장 불가능” 핑퐁게임
“당장 자금지원 없으면 부도 위기”
시드릴ㆍ소난골 드릴십 물린 금액에
법정관리 땐 발주 취소 늘어 타격
대우조선해양의 운명이 사실상 법정관리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우조선의 생사를 결정 지을 회사채 채무재조정을 위한 사채권자 집회(17~18일)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회사채 최다 보유자인 국민연금이 극한 대립을 보이면서 평행선만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11일 정부와 산업은행이 제시한 대우조선 채무조정안에 대해 ‘특정 기업을 살리기 위해 국민 노후자금의 손실을 감내하는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국민연금은 이어 이날 전주 국민연금 사옥에서 산은과 긴급 회동을 갖고 “4월 회사채 만기를 다음 만기일인 7월로 한차례 미루고, 대우조선에 대해 직접 실사를 하겠다”고 ‘역(逆)제안’을 했다. 현재의 채무재조정안이 정부와 산은 주도로 일방적으로 작성돼 사채권자들의 반발이 심한 만큼 일단 3개월 정도 시간을 번 뒤 절충안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다. 국민연금의 역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채무재조정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밝힌 셈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산은이 ‘모 아니면 도’ 식의 선택만 강요할 게 아니라 채무조정안에 대해 시간을 갖고 이해관계자 간 이해와 인식을 공유해 나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산은은 이날 저녁 늦게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국민연금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채무재조정에 실패하면 예고한 대로 P플랜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산은은 이어 “대우조선의 상황이 위급한데 지난 3개월간 외부에서 진행한 실사 결과를 제쳐두고 수개월에 걸쳐 다시 직접 실사를 하겠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대우조선은 당장 추가 자금지원이 없으면 4월말~5월초 중 사실상 부도위기에 직면한다”고 강조했다. 산은 관계자는 “투자금의 회수율을 높이려는 어떤 요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P플랜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측이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대우조선이 초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에 들어갈 가능성이 짙어졌다. 정부는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재조정에 실패하면 4월 회사채 만기 전인 21일 전후로 법원에 P플랜에 신청할 계획이다.
P플랜에 들어가는 순간 대우조선은 물론 모든 채권자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당장 대우조선 회사채ㆍ기업어음 투자자들은 총 투자액 1조5,000억원 중 1,500억원만 건질 수 있다. 이마저도 10년에 걸쳐 돌려받아야 한다. 법정관리 땐 잉여자금이 생길 때만 갚아주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법정관리에 따른 해외 선주들의 발주 취소는 더 큰 충격이다. 대우조선이 P플랜에 들어갈 경우 선주들이 이를 빌미로 계약을 취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선박은 총 수주선박 114척 가운데 최소 8척(삼정 회계법인 실사보고서)이다. 파산 가능성이 거론되는 유전개발업체 시드릴이 발주한 드릴십 2척과 인도대금을 받기 위해 협상이 진행 중인 앙골라 소난골 드릴십 2척도 이에 포함된다. 대우조선이 이들 선박 4척에 물린 돈만 2조원 가량이다. 8척의 선박 계약만 취소돼도 대우조선은 ‘2조원+a’의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더구나 계약 취소가 8척에 그칠 것이란 보장도 없다. 법정관리 시 ‘선주가 계약 취소를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 계약을 맺은 선박만 96척에 달하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회생계획안을 기각하면 대우조선은 곧장 주식시장에서 상장 폐지된다. 정부 관계자는 “P플랜에 따른 후폭풍을 줄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지만 모든 이해관계자의 타격은 불가피하다”며 “사채권자들의 채무조정 참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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