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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갈등리포트] 15년간 특수학교 못 지은 서울… 장애 학생들 눈물 언제 마를까

입력
2017.04.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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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 공진초 폐교 터. 운동장 가에는 쓰레기가 쌓여있고(왼쪽 사진) 축구 골대는 벌겋게 녹이 슬어있다(오른쪽 사진). 학생 수 감소로 2014년 학교가 강서구 마곡동으로 이전한 후 1만1,000㎡의 학교 부지는 3년째 방치되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 공진초 폐교 터. 운동장 가에는 쓰레기가 쌓여있고(왼쪽 사진) 축구 골대는 벌겋게 녹이 슬어있다(오른쪽 사진). 학생 수 감소로 2014년 학교가 강서구 마곡동으로 이전한 후 1만1,000㎡의 학교 부지는 3년째 방치되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하교하는 초등학생들의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해야 할 운동장에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축구 골대는 시뻘건 녹이 슬었고 운동장 주변에는 온갖 쓰레기가 널려있었다. 오가는 사람은 운동장을 돌며 운동을 하거나 햇빛이 잘 드는 벤치에 앉아있는 동네 노인 몇 명이 전부였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공진초 폐교 터. 고층아파트와 대형마트에 둘러싸인 이 곳은 시간이 멈춰버린 텅 빈 섬 같았다. 학생 수 감소로 지난 2014년 강서구 마곡동으로 학교가 이전한 후 1만1,000㎡(약 3,327평)에 달하는 이 부지는 3년째 이렇게 방치돼 있다.

15년째 특수학교 못 지은 서울시교육청이 선택한 곳

공진초 폐교 터의 소유주인 서울시교육청은 이곳에 지적 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를 지을 예정이었다. 2013년 특수학교 설립을 행정예고했지만 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철회했다. 이후 강서구 마곡동의 대체부지를 알아봤으나 서울시와의 협의가 결렬되면서, 결국 지난해 8월 다시 이곳에 설립하기로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육부 중앙투자심의위원회, 서울시의회 예산 심의 등 특수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행정절차를 모두 마친 상태. 현재 학교 설계도를 공모 중으로, 2019년 3월 개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예정대로 개교한다면 2002년 서울에 마지막으로 세워진 특수학교인 경운학교 이후 17년 만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는 것이다. 전국에서 10년 넘게 특수학교가 새로 들어서지 못한 곳은 서울이 유일하다.

특수학교가 지어지지 못한 지난 15년 간 장애학생과 학부모들이 겪었던 고통은 컸다.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고3 A(18ㆍ서울 강서구)양은 중학교 때부터 특수학교 진학을 원했지만 정원이 모두 차 일반 중학교 특수학급에 갈 수밖에 없었다. 장애 학생들의 경우 담임 교사 1명이 수업을 전담하는 초등학교 때는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을 다니는 경우도 많지만, 교과별로 교사가 달라지고 입시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중학교 때부터는 대부분 특수학교 진학을 희망한다. 일반 중학교에서 비장애 학생들과의 통합수업이 버거웠던 A양은 고교는 특수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지만, 학교가 버스로 왕복 3시간 거리에 있다. A양이 사는 강서구에 있는 특수학교(교남학교)는 정원이 꽉 차 구로구에 있는 특수학교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A양의 어머니 이은자(46)씨는 “7시20분 통학버스를 타기 위해 아이가 아침마다 6시 전에 울면서 일어난다”며 “통학을 너무 힘들어해 전공과 진학은 포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특수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고교 졸업 후 특수학교 내에서 직업훈련, 사회적응 훈련 등을 받을 수 있는 2년 과정의 전공과에 진학한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장애 학생은 A양만이 아니다. 특수교육을 받는 서울 전체 장애학생 중 일반학교를 다니는 학생(8,165명)이 특수학교를 다니는 학생(4,496명)보다 무려 두 배 가까이 많다. 대부분 원하지 않는 선택이다. 어렵사리 특수학교에 입학을 했더라도 상황은 열악하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42.1%는 30분~2시간 원거리 통학을 한다. 특수학교 부족으로 기존 특수학교들이 무리하게 학급을 늘리거나 정원을 초과해 운영하다 보니 교육환경은 악화일로다. 지체 장애 학교가 부족해 지체 장애 학생이 지적 장애 학교를 다니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공진초 터를 비롯해 서초구 염곡동(지체 장애 특수학교ㆍ2019년 개교 예정)과 중랑구(세부 지역 미정ㆍ2023년 개교 예정)에 총 3개의 특수학교를 신설할 계획이다.

특수학교 설립 추진 일지
특수학교 설립 추진 일지
공진초 울타리를 따라 조성된 약 300m 길이의 허준 테마거리. 허준 동상과 동의보감 등 각종 조형물이 들어서 있으며, 테마거리 끝에는 허준 박물관과 대한한의사협회, 구암공원(허준 기념공원) 등이 있다.
공진초 울타리를 따라 조성된 약 300m 길이의 허준 테마거리. 허준 동상과 동의보감 등 각종 조형물이 들어서 있으며, 테마거리 끝에는 허준 박물관과 대한한의사협회, 구암공원(허준 기념공원) 등이 있다.

주민들 “국립한방병원 지어 지역 발전시켜야” 거센 반발

하지만 설립 예정지 3곳 중 가장 먼저 진행 중인 공진초 터부터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상태다. 공진초와 4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790세대 규모의 강서한강자이아파트 일부 주민들은 서울시교육청의 특수학교 설립 행정예고 직후인 지난해 9월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반대 추진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결성, 대대적인 반대 운동에 나섰다.

공진초 터에 국립한방병원 등 한의학 관련 시설이 들어와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조선 중기 의학자였던 허준의 출생지이자 동의보감 집필지인 이 지역은 공진초 터 울타리를 따라 약 300m의 ‘허준 테마거리’가 조성돼 있다. 이 거리 끝에는 허준 박물관과 대한한의사협회가 있고, 그 뒤로는 허준 기념공원인 구암공원이 있다. 강서구가 2015년 의료관광특구로 지정된데다 김포공항 인근인 만큼 외국인 환자와 관광객 유치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국립한방병원의 설립을 검토하며 지난해 말 수도권 7개 부지를 대상으로 벌인 사전 타당성조사에서 공진초 터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또 서울 25개 구 중 양천구 영등포 등 특수학교가 한 곳도 없는 구가 8개나 되는데, 이미 1곳이 있는 강서구에 또 짓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비대위의 주장이다. 전혜영 비대위 수석부위원장은 “영구임대단지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강서구는 저소득층 고령자가 많다 보니 서울시 전체 구 중 재정 자립도가 최하위”라며 “건축폐기물 처리시설 등 주민들이 기피하는 시설들이 다 모여있는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이므로, 공진초 터에 국립한방병원을 유치해 지역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 부위원장은 “지역을 균등하게 발전시키자는 것이지, 집값 하락을 우려한 님비(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특수학교 설립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비장애 학생들은 대부분 집에서 1.5km 내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몸이 불편한 장애학생들이 오히려 먼 곳의 학교를 다니는 등 교육환경이 열악해 특수학교 확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특수학교에 주민 편의시설을 짓고, 설립 과정에 주민을 참여시켜 최대한 주민들을 설득할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5월 주민설명회를 열어 소통 강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주민협의체를 만들어 특수학교 건물 배치나 외관 디자인 등에 주민들이 참여하는 등 함께 협력하며 학교를 짓고 싶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공진초 터와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둔 강서한강자이아파트에 "특수학교 설립을 철회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왼쪽 사진). 공진초와 약 200m 떨어진 대한한의사협회 입구에도 "지역발전, 국가 보건의료 발전을 위해 국립한방병원을 지어야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어있다(오른쪽 사진).
공진초 터와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둔 강서한강자이아파트에 "특수학교 설립을 철회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왼쪽 사진). 공진초와 약 200m 떨어진 대한한의사협회 입구에도 "지역발전, 국가 보건의료 발전을 위해 국립한방병원을 지어야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어있다(오른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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