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수출액 1323억 달러
14.9% 늘며 5개월 연속 상승
반도체 등 빼면 4.8% 증가에 그쳐
기저효과 감안하면 ‘그들만의 잔치’
수출이 5개월 연속 상승하며 한국 경제에 봄이 왔다는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두 자릿수 수출 지표 개선은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일부 업종의 ‘특수’가 일으킨 착시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체감 경기와는 동 떨어진 그들만의 ‘수출 잔치’가 자칫 적절한 정책 대응을 늦춰 침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분기 우리나라의 수출액(잠정)은 1,323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9%나 증가했다. 이러한 상승폭은 2011년 3분기 이후 22분기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수출은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연속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당초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로 경기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것이라는 ‘4월 위기론’과 정반대의 결과다. 이에 따라 국내 경제가 이미 작년 4분기 ‘바닥’을 찍고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통계의 이면을 꼼꼼히 따져보면 수출 ‘서프라이즈’엔 왜곡이 있다. 1분기 업종별 수출 증감률을 보면 석유제품(67.7%) 반도체(44.7%) 석유화학(38.3%) 등은 한해 전에 비해 수출 규모가 크게 늘어났지만 자동차(3.0%) 선박(-11.3%) 가전(-15.9%) 무선통신기기(-21.9%) 등은 부진했다. 실제로 반도체, 석유제품, 석유화학을 제외하면 1분기 수출액은 전년 대비 4.8% 증가하는 데 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1분기 수출 성적이 저조했다는 ‘기저 효과’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특정 업종의 ‘잔치’에 머무르고 있는 셈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수출 호조는 반도체 ‘특수’에 기초한 착시”라며 “절대액으로 보면 2014년이나 2015년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말했다.
물론 반도체와 석유화학에서 시작된 훈풍이 다른 업종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 회복의 ‘불쏘시개’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현장 분위기다. 무엇보다 반도체 수출 증가가 제품 출하량 증가보다 단가 상승에 기인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기준 서버용 D램 16GB 가격은 지난해 7월 최저점과 비교해 98%나 상승했다. ‘출하량 증가→생산ㆍ투자 확대→고용증가→소득증대’의 선순환을 기대하기 어려운 셈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반도체 수출 호조는 제품단가 상승에 따른 영향이 크다”며 “반도체 출하량 증가세는 ‘의미 있는 수준’이 아니다”고 말했다.
더구나 반도체 산업은 ‘낙수효과’도 크지 않다. 홍운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후방 산업 파급 효과가 큰 자동차 산업과 달리 반도체는 대규모 장치산업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하도급 거래도 많지 않다”며 “고용창출이나 다른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수출 100만 달러당 반도체의 취업 유발인원은 3.58명으로, 식료품(22.6명) 섬유ㆍ의복(12.35명) 일반기계(10.38명) 자동차(9.97명)에 비해 크게 낮다.
석유화학도 마찬가지다. 국제유가 회복에 따른 제품단가 인상이 수출액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임지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1~3월 배럴당 27~36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두바이유)가 올해 1분기엔 50달러대로 상승했다”며 “이에 따라 석유 관련 제품 단가가 오르면서 수출액 증가폭이 크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도 “장치산업인 석유화학 산업은 자동화의 영향으로 대규모 플랜트의 근무 인력이 많아야 200명(3교대 기준) 정도”라며 “이미 가동률을 최고치로 유지하고 있던 터라 호황에도 고용이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밑바닥 경기와 무관한 반도체ㆍ석유발(發) ‘숫자 착시 호황’으로 정부가 오판을 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실제로 내수경기 침체와 대외여건 악화를 이유로 작년 말부터 제기됐던 올해 상반기 ‘조기 추경론’은 어느 새 예상보다 양호한 수출 지표 등에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의 한 교수는 “해외생산 확대, 수출 부가가치 감소 등으로 수출과 가계 가처분소득간 연결고리가 이미 끊어진 지 오래”라며 “수출보다는 소득, 소비, 고용추이 등 내수지표를 정책 판단의 주된 근거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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