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이 일치된 북핵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끝난 뒤 한반도 주변으로 미국의 전략무기 자산이 대거 배치되고 있다. 지난달 한미연합훈련을 마치고 싱가포르로 이동했던 핵항모 칼빈슨호가 호주로의 예정 항로를 바꿔 다시 한반도 인근 서태평양 해역으로 향하고 있다. 같은 항모가 한 달도 안돼 한반도 수역에 재차 배치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또 다른 항모 로널드 레이건호도 모항(母港)인 일본 요코스카에 정박해 있어 한반도 주변에 2개 항모 전단이 투입되는 셈이다. 항공모함급인 강습상륙함 본험 리처드호도 한반도로 이동 중이다. 미국 태평양 항모 전력의 거의 3분의 1이 한반도 인근으로 집결하는 것이다. 미국 태평양사령부는 또 “괌 기지에 있는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도 다음달부터 일본 요코다 기지에 전진 배치된다”고 밝혔다. 글로벌호크가 괌 기지를 벗어나는 것도 처음이라고 한다. 북한이 추가 도발할 경우 언제라도 군사충돌로 번질 수 있을 정도로 한반도의 군사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미국 전략자산의 유례없는 한반도 집중 배치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미국이 보는 북핵 위기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고, 불가피하다면 군사적 대응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신호다. 시리아 공습과 관련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어떤 나라도 국제적 규범과 합의를 위반해 타국이 위협이 되면 어느 시점에 대응이 시작된다”고 한 발언을 흘려듣기 어렵다. 미중이 북핵 해법에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것을 북한이 오판해 추가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행한다면 한반도 안보의 당사자인 우리가 외교ㆍ안보의 지렛대를 상실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미중 정상회담의 메시지는 당장은 구체적 북핵 해법을 찾지 못했지만 중국이 북한을 단속해 비핵화 협상에 나서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라는 것이다. 틸러슨 장관이 정상회담 뒤 “필요하면 독자적 방도를 마련하겠다”고 한 것도 일단 공을 중국에 넘기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군사대응 카드는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겨냥한 의도가 짙다.
중국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안보가 자신의 손에 달려 있음을 자각하고 이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야 한다. 중국의 쌍궤병행이나 쌍중단 주장은 지금은 한가하게 들린다. 당장은 북한의 추가도발을 저지하는 게 급선무이고, 바로 중국의 할 일이다. ‘중국역할론’의 성패는 단기적으로 북한의 추가도발 여부에서 판가름 날 것이고, 미국의 향후 행동도 여기서 시작될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늦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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