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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감동 없는 정치

입력
2017.04.1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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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최대 약점은 국무장관 재임 시 개인 이메일 사용문제였다. 본선만이 아니라 당내 경선에서도 그랬다. ‘샌더스 현상’이란 말을 만들어 내며 클린턴을 무섭게 추격하던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의원에게도 좋은 공격거리가 될 만했다. 2015년 10월 라스베이거스서 열린 민주당 경선 첫 토론. “국민들은 그놈의 이메일(damn emails) 얘기에 아주 질려 있다. 이메일 말고 미국이 직면한 진짜 문제들을 얘기하자.” 예상을 깨고 샌더스가 클린턴을 공격하는 대신 감싸자 청중석에서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 이메일 건으로 골머리를 앓던 클린턴은 반색하며 샌더스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로서는 큰 짐을 던 셈이었다. 하지만 이날 토론의 진정한 승자는 샌더스였다. 시카고 트리뷴은 ‘샌더스의 밤’이란 글을 통해 그의 진정성을 높게 평가했고, 토론 직후 소셜미디어 트래픽에서도 클린턴보다 샌더스에 관한 언급이 1만여건이나 많았다. 그는 지엽적인 사안에 대해 공격 대신 감싸 안는 ‘넓은 소맷자락(금도ㆍ襟度) 정치’를 멋지게 보여 줬다.

▦ 5ㆍ9 장미대선이 코앞에 닥치자 주요 후보들 간 네거티브 난타전이 도를 넘었다. 이런 판에 상대를 감싸 안아 감동을 주는 정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 6일 중견언론인모임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3D 프린터’ 발음 논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용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또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발음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쓰리디 프린터’라고 읽는다”고 답변했다. “삼디 프린터”라고 말해 구설에 오른 문 후보를 깎아 내리는 뉘앙스다.

▦ 만약 안 후보가 “그렇게 읽는 게 뭐가 중요하냐”며 적어도 이 사안에 관해서는 문 후보를 감쌌다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강퍅하고 여유 없는 정치하기는 문 후보라고 나을 게 없다. 민주당의 ‘안철수 조폭 사진’ 공세에 대해 “뭔가 오해가 있었을 것”이라며 자제시킬 만한 도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지율 변화에 따른 대선구도 급재편 속에 피차 무조건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데만 급급하다. 그렇게 해서 승리한들 나라 안팎의 난제를 풀기는커녕 ‘승자의 저주’에 빠지기 십상이다. 지금 국민은 크게 이기는 감동의 정치에 목마르다.

이계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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