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4.11
페미니스트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가 지난 3월 영국 방송 ‘채널 4’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 살아온 시스젠더(cisgender) 여성과 다르다’고 말한 게 논란이 됐다. 그는 “모든 젠더 문제는 우리의 경험, 세상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과 관련된다”며 “세상이 남성에 부여한 특권을 갖고 살다가 젠더를 바꾼 사람의 경험이 처음부터 여성으로 살아온 이들과 동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 정체성의 차이와 구분을 상시적 억압과 차별로 경험해온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그의 말에 분노했고,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도 아디치에의 말에 당혹해 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아디치에의 말이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에 불완전함의 낙인을 찍었다고 여겼고, 페미니스트들은 새로운 억압과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 논란은 한편으로, 모든 성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젠더 관념의 관성으로부터 누구도 완벽히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드러낸 계기였다. 아디치에도 “다양성(diversity)이 분할(division)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고 완곡하게나마 그 관성을 비판했지만,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다양성은 차이와 분할을 전제한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오리건주의 한 지방법원은 지난달 말 시민의 청원을 수용해 ‘무성(無性ㆍagender)을 법적 성별로 인정했다. 무성은 남성이나 여성 어디에서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사람으로, 간성(inter sex)이나 양성(binary sex), 트랜스젠더와 다르다. 21세기의 앞선 세계는 그렇게, 남녀 외에도 4개의 성이 더 존재한다.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1922~2007)의 ‘제5 도살장’은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나치 포로로 독일 드레스덴의 수용소에 갇혔던 작가의 체험- 수용소와 드레스덴 폭격의 체험 등-을 SF적 기법으로 쓴 대표작이다. 소설에는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의 외계인에게 납치됐다가 시간여행 능력을 얻게 된 주인공 빌리가, 외계인들이 지구인의 성을 7개로 분류하는 데 충격을 받는 대목이 나온다. 남성과 여성, 남ㆍ녀 동성애자, 65세 이상 남ㆍ녀와 갓난아이. 보니것이 SF적으로 우회한 성 분류는 오늘날의‘젠더 분류’와는 기준과 의미 면에서 다르긴 하지만, 웃음 안에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든 슬픔과 분노까지 담아낼 줄 알던 저 작가는 오래 전부터 성의 이분법을 의심했고 무엇보다 따분했던 듯하다.
커트 보니것이 2007년 오늘(4월 11일)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