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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

입력
2017.04.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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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4.11

성과 젠더 이분법을 앞서 의심하고 또 따분해했던 작가 커트 보니것이 2007년 4월 11일 별세했다.
성과 젠더 이분법을 앞서 의심하고 또 따분해했던 작가 커트 보니것이 2007년 4월 11일 별세했다.

페미니스트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가 지난 3월 영국 방송 ‘채널 4’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 살아온 시스젠더(cisgender) 여성과 다르다’고 말한 게 논란이 됐다. 그는 “모든 젠더 문제는 우리의 경험, 세상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과 관련된다”며 “세상이 남성에 부여한 특권을 갖고 살다가 젠더를 바꾼 사람의 경험이 처음부터 여성으로 살아온 이들과 동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 정체성의 차이와 구분을 상시적 억압과 차별로 경험해온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그의 말에 분노했고,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도 아디치에의 말에 당혹해 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아디치에의 말이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에 불완전함의 낙인을 찍었다고 여겼고, 페미니스트들은 새로운 억압과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 논란은 한편으로, 모든 성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젠더 관념의 관성으로부터 누구도 완벽히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드러낸 계기였다. 아디치에도 “다양성(diversity)이 분할(division)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고 완곡하게나마 그 관성을 비판했지만,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다양성은 차이와 분할을 전제한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오리건주의 한 지방법원은 지난달 말 시민의 청원을 수용해 ‘무성(無性ㆍagender)을 법적 성별로 인정했다. 무성은 남성이나 여성 어디에서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사람으로, 간성(inter sex)이나 양성(binary sex), 트랜스젠더와 다르다. 21세기의 앞선 세계는 그렇게, 남녀 외에도 4개의 성이 더 존재한다.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1922~2007)의 ‘제5 도살장’은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나치 포로로 독일 드레스덴의 수용소에 갇혔던 작가의 체험- 수용소와 드레스덴 폭격의 체험 등-을 SF적 기법으로 쓴 대표작이다. 소설에는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의 외계인에게 납치됐다가 시간여행 능력을 얻게 된 주인공 빌리가, 외계인들이 지구인의 성을 7개로 분류하는 데 충격을 받는 대목이 나온다. 남성과 여성, 남ㆍ녀 동성애자, 65세 이상 남ㆍ녀와 갓난아이. 보니것이 SF적으로 우회한 성 분류는 오늘날의‘젠더 분류’와는 기준과 의미 면에서 다르긴 하지만, 웃음 안에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든 슬픔과 분노까지 담아낼 줄 알던 저 작가는 오래 전부터 성의 이분법을 의심했고 무엇보다 따분했던 듯하다.

커트 보니것이 2007년 오늘(4월 11일)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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