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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 읽기] 비극은 제3자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연습이다

입력
2017.04.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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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80년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 해군을 괴멸시킨 살라미스 해전을 묘사한 빌헬름 폰 카울바흐의 그림. 1868년작.
기원전 480년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 해군을 괴멸시킨 살라미스 해전을 묘사한 빌헬름 폰 카울바흐의 그림. 1868년작.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이란 비극은 기원전 472년 아테네에서 개최된 디오니소스 축제에 처음 무대에 올려졌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춘분 때 6일 동안 거행되는 아테네 도시의 의례다. 축제 첫날 포도주와 ‘풍요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고향 엘레우테라이에서 가져온 횃불을 들려오는 행사를 거행한다. 이 횃불은 비극 드라마 경연이 있는 6일 동안 활활 타오른다. 그리고 나면 멀리서 순례여행 온 그리스인들과 동맹도시 시민들의 행렬이 있다. 그 다음엔 그 전해 전투에서 죽은 전사자들의 아들들의 장엄한 열병식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모두 그리스 정신인 자신들의 최선을 무대에 올리는 ‘공정한 경쟁’ 축제를 즐길 참이다. 올림픽경기가 인간 신체의 최선을 확인하는 축제라면, 디오니소스 축제는 인간 정신의 최선을 고양시키는 축제다. 이들은 호메로스 시들 암송 경연과 피리와 리라연주가 곁들인 디티람보스 경연을 벌인다.

현존 그리스비극 중 유일한 역사극 ‘페르시아인들’

이 축제의 절정은 비극경연대회다. 비극경연은 가장 경쟁이 심했다. 그 전해 가을에 극작가들은 ‘트리올로지’라고 알려진 세편의 비극과 반인반수가 등장하는 ‘사튀로스극’ 한편을 가지고 신청한다. 그러면, 이 축제를 관장하는 아테네 도시의 최고지도자인 ‘아르콘’(archon)이 세 명의 극작가를 선별한다. 극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질 수 있도록 도시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도시는 합창대, 합창대원 월급, 무대장치, 의상, 가면 등 일체의 비용을 지불한 사람을 지정한다. 그는 아테네 귀족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인물로 ‘코레고스’(choregos)라고 불렀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와 서양문명의 천재성은 바로 이 축제를 통해 확인되고 확장되었다. 그 창의성의 꽃봉오리가 열리기 시작하여 거부할 수 없는 향기를 내뿜어, 서양문명과 문화의 소중한 뿌리이자 척도가 되었다. 지금까지 남겨진 고대 그리스의 39개 비극작품들은 대부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신화적인 이야기가 소재다. 여기서 신화적인 이야기란, 인간 삶에 관한 본능적인 감성과 이성, 그리고 도시문명을 이루려는 인위적이며 사회적인 분투에 관한 은유다. 39개 비극들 중 한 개만이 신화를 근거로 창작되지 않았다. 바로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이다.

“도대체 아테네인이 누구냐?”

아이스킬로스는 8년 전인 기원전 480년에 일어난 끔찍한 전쟁인 살라미스 해전을 다루었다. 당시 아테네인들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제국의 함선을 물리친, 이 해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스킬로스는 18년 전인 기원전 490년에 일어난 마라톤전쟁에 직접 참전한 군인이다. 당시 아테네는 스파르타 군인들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스파르타인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홀로 다리우스 대왕이 이끄는 페르시아 군대를 탁월한 전략으로 물리쳤다.

비극 ‘페르시아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원전 4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오늘날 터키 서부인 이오니아 지방에 아테네에서 이주해온 이민자들이 많이 살았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은 이오니아를 포함한 소아시아, 이집트, 팔레스티나, 시리아, 그리고 에게해 많은 섬들을 점령하여 페르시아 제국의 식민지로 삼았다. 당시 이오니아의 도시 밀레투스에 거주하던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제국에 반란을 일으켜 본토 아테네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아테네인들은 기원전 499년 함대 20척을 보내 당시 페르시아의 식민지인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를 함락하는데 성공한다. 천하무적이었던 페르시아는 무명도시 아테네가 자신의 제국에 들어와 전쟁을 일으키는데 놀란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다리우스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고 전한다. “도대체 아테네인들이 누구냐?”(‘역사’ 5.105) 이때부터 아테네가 인류역사의 중앙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다리우스 대왕은 아테네라는 조그만 도시의 내정 개입을 용납할 수 없었다. 기원전 494년, 이오니아 반란들이 진압되고 밀레투스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아테네인들은 이 패배를 간직하기 위해 비극작품으로 남겼다. 그것이 아이스킬로스의 경쟁자였던 비극시인 프뤼니코스의 ‘밀레투스의 함락’이다. 이 비극작품은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헤로도투스는 이 작품을 본 아테네인들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프뤼니코스가 ‘밀레투스의 함락’이란 비극을 쓰고 공연했을 때, 극장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었다.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삶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재난을 상기시켰다는 이유로 프뤼니코스에게 1,000드라크마(은화) 벌금을 부과하고, 그 비극 공연을 영원히 금지시켰다.”(‘역사’ 6.21) 아테네인들은 해가 뉘엿뉘엿 지는 아테네 극장에서 다리우스 군대의 창과 칼로 처참하게 죽어가는 자신들의 부모, 친척, 아들들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였다. ‘밀레투스의 함락’은 아직 자신을 돌아보고, 공포와 연민을 느껴 카타르시스에 이르기는 너무 서툴렀다.

아테네 황금시대를 연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

다리우스 대왕은 기원전 490년 그리스 본토를 침공하여 초토화시킨다. 그러나 마라톤 전투만은 예외였다. 아테네인들과 플라테아인들은 마라톤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6,400명이나 죽이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다리우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는 10년 후인 기원전 480년에 아버지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그리스를 공격하였다. 아테네인들을 도운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300명을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장엄하게 싸우다 전사한다. 2007년에 개봉한 프랭크 밀러 원작 만화의 영화 ‘300’이 그 내용이다.

테르모필레협곡의 전투를 다룬 영화 '300'. 한국일보 자료사진
테르모필레협곡의 전투를 다룬 영화 '300'. 한국일보 자료사진

크세르크세스는 아테네를 초토화시켰지만, 살라미스 해전에선 참패한다. 살라미스 해전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는 예상을 깨고 승리한다. 크세르크세스는 다시 본토로 퇴각한다. 그 다음 해에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이라는 연합군을 만들고, 델로스에 있었던 금고를 기원전 454년에 아테네로 이전하면서, 아테네 황금시대를 열었다.

왜 아이스킬로스는 살라미스 해전에 관한 비극을 기원전 472년에야 무대에 올렸는가? 사실 살라미스 해전에 관한 비극을 먼저 올린 작가는 ‘밀레투스의 함락’을 쓴 프뤼니코스다. 그의 ‘페니키아 여인들’이란 작품은 살라미스 해전을 경험한 페르시아인들의 반응을 담았다. 이 작품도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페니키아 여인들’를 무대에 올리도록 재정적으로 후원한 인물은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다.

프뤼니코스의 ‘페니키아 여인들’과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은 무엇이 다른가? ‘페니키아 여인들’에서 크세르크세스의 패전을 알리는 사람은 페르시아의 내시다.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아테네엔 왕도 없고 내시도 없기 때문에, ‘페니키아 여인들’은 처음부터 페르시아를 야만인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폄하하기 위한 작품이다. 프뤼니코스는 이 작품으로 아테네인들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승리를 만끽하고 싶은, 당시 아테네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그러나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은 달랐다.

‘페르시아인들’은 지혜로운 페르시아 원로들의 노래로 시작한다. 그들의 노래는 압도적이며 감동적이다. ‘페르시아인들’의 코레고스는 페리클레스다. 그는 23세의 나이로 찬란한 아테네 문명을 꿈꾸고 있었다. 학자들은 이 작품을 살라미스 전쟁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한 찬양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 다음해인 기원전 471년 테미스토클레스가 도편제에 의해 아테네에서 10년 동안 추방된 것을 보면, 이 분석은 틀렸다. 어떤 학자들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시작된 델로스 동맹에 대한 선전이라고 해석한다. 기원전 454년 델로스에 있던 동맹 자금을 아테네로 가져오면서, 파르테논신전과 아크로폴리스건축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그보다 더 큰 획기적인 가치가 숨어있다.

아이스킬로스와 페리클레스는 이 작품이 아테네 정신을 일깨우고, 그리스의 위대한 문명의 씨앗이 무엇인지를 아테네 시민들에게 고취시키려 한다. 아테네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필요한 가치인 경청, 배려, 그리고 용서를 이 연극을 통해 감동적으로 전달한다.

살라미스 해전을 페르시아인 눈으로 읽다

‘페르시아인들’은 살라미스 해전을 다루지만, 그리스 본토나 아테네인들이 한 명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 비극의 배경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수사와, 거기에 거주하는 페르시아 원로들, 패전 소식을 가져온 전령, 크세르크세스의 어머니 아토사, 혼으로 등장하는 크세르크세스의 아버지 다리우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겨우 살아온 크세르크세스뿐이다.

아테네 원형극장에 모인 아테네시민들은 대부분 아이스킬로스처럼,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한 군인들이다. 비극 공연이 시작하기 전, 살라미스 해전에서 전사한 유가족의 아들들이 눈물을 흘리며 무대 앞으로 걸어가다 맨 앞에 앉았다. 시민들은 해전에서 전사한, 자신들의 동료이자 누군가의 아버지며 아들이었던 이들을 생각하며 함께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들은 비극공연에서 아테네 군인들이 얼마나 위대하게 페르시아군대를 물리쳤는지 보고 싶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비극을 통해 자신의 타인의 눈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비극을 통해 자신의 타인의 눈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공연은 12명으로 구성된 페르시아 원로 합창단의 장엄한 노래로 시작한다. ‘페르시아인들’의 주인공은 이 합창대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이스킬로스의 다른 연극들에서도 합창대의 노래 대사가 가장 많으며, 이들이 주인공이다. 이 원로들은 다리우스의 무덤 근처에 있는 왕궁에서 대규모 페르시아 육군과 해군을 이끌고 그리스로 간 다리우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페르시아에 남은 사람이라곤 원로들과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기다리는 여인들뿐이다.

원수는 나의 적이 아니라 먼 친적

특히 아이스킬로스는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한 페르시아 군인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여러 곳에서 반복한다. 그들 이름은 이란 이름이지만 아테네 시민들의 귀에 익숙하도록 그리스식으로 전환하였다. 특히 80행엔 크세르크세스를 “그 자신이 신들과 동등하며, 그가 속한 인종은 금으로 뿌려졌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행이 지칭하는 신화적인 인물은 그리스인들의 조상인 페르세우스이다. 아이스킬로스는 이 구절에서 아테네인들의 원수인 크세르크세스가 사실은 적이 아니라 먼 친척이란 점을 강조한다. 그리스어로 극장은 ‘테아트론’(theatron)인데, 그 본래 의미는 “자기 자신을 제3자의 눈으로 관찰하는 장소”다. 기원전 5세기 인류는 처음으로 자신을 제3자의 눈으로, 심지어 원수의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기대와는 달리, 페르시아인들만 등장하고, 그들은 같은 가족이라고 말하는 이 비극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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