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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가 꼰대를 부른다…여전한 대학가 ‘똥군기’

입력
2017.04.0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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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4일 강원지역 한 사립대학교 대학생 예비역 수십 명이 대로에서 속옷 차림으로 단합 행사를 하는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퍼져 논란이 일었다. 각종 온라인 게시판에 '요즘 대학 예비군 군기', '○○대 X군기', '○○ 군기 수준' 등 제목과 함께 오른 문제의 사진. 인터넷 게시판 화면 캡처
2015년 3월 24일 강원지역 한 사립대학교 대학생 예비역 수십 명이 대로에서 속옷 차림으로 단합 행사를 하는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퍼져 논란이 일었다. 각종 온라인 게시판에 '요즘 대학 예비군 군기', '○○대 X군기', '○○ 군기 수준' 등 제목과 함께 오른 문제의 사진. 인터넷 게시판 화면 캡처
연세대학교 모 학과의 새내기 새로 배움터에 대한 제보글. 대나무숲 페이스북 캡처
연세대학교 모 학과의 새내기 새로 배움터에 대한 제보글. 대나무숲 페이스북 캡처

“이런 군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악습은 다 같이 반성하고 없어져야 합니다.”

최근 서울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에는 A학과의 ‘군기 잡기’에 대한 불만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A 학과에서 새내기 새로배움터(이하 새터) 행사 때 신입생들에게 강압적으로 FM(관등성명식 자기소개)과 개인기를 시킨다는 것. 선배들이 만족할 때까지 신입생들은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FM과 개인기를 계속했다. 이 글의 작성자 및 일부 학생들은 “엄연한 폭력 행위”라며 학생회의 사과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새터 뿐만 아니다. 신입생과 재학생이 모이는 과 행사 자리에서도 선배들의 이름을 못 외우면 면박을 준다. 이와 같은 A학과의 군기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수년 전에도 존재했던 군대식 문화가 아직도 계속되는 것에 일부 재학생, 졸업생들은 황당한 눈치다. 최근 이 학과를 졸업한 이연주(가명ㆍ24)씨는 “특정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대로 이어진 문화에 젖어 드는 게 문제”라며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공론화가 되지 못해 군기 잡기가 지속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군대식 문화의 잔재인 ‘군기 잡기’가 대학가의 문제로 대두된 것은 비단 한두 해 전의 일이 아니다. 2011년에도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대학생 46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52.5%가 ‘학과에 군기를 잡는 사람이 있다’고 답할 정도로 오래된 문제다.

그러나 다년간에 걸쳐 군기를 근절하자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군기잡기 문화는 이제 대학생들이 ‘똥군기’라고 부르는 경멸의 대상이 됐다.

여주대학교 모 학과에서 논란이 된 규율. 온라인 커뮤니티
여주대학교 모 학과에서 논란이 된 규율. 온라인 커뮤니티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의 B학과에서는 최고학번을 제외하고 전 학년이 학내 이어폰 착용 금지되고, 주머니에 손을 넣지 못하는 등의 규율을 따라야 한다. B학과 재학생 최현중(가명ㆍ24)씨는 “신입생 때 불편했어도 선배가 돼서 규율을 없애는 데엔 다들 소극적이다”라며 “자신이 당한게 억울해서 규율을 없애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여주대학교는 유사한 군기 문제를 공론화 시켜 결국 폐지시켰다. 이 대학 C학과에서도 신입생들에게 인사, 복장, 전화 양식 등이 담긴 규율을 강요했으나 문제를 느낀 한 학생이 이를 언론에 제보해 화제가 되자 강제 규율이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군기 문화의 원인으로 도제식 교육을 꼽기도 한다. 예체능 계열처럼 일부 학과에서 상명하달식의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고 있고, 이러한 방식이 군기 문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연구소 관계자는 “일방적으로 승복하고 시키는 대로 한다는 면에서 도제식 교육과 군기는 연관성이 있다”며 “학생들이 도제식 문화를 답습하는 것이 군기가 남아있는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일선 대학 교수들은 잘못된 사고 방식과 학과의 노력 부족을 지적한다. 서울시립대학교 스포츠과학과 진주연 교수는 “선후배 관계를 유지하는 데 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군기가 사라지지 않는 원인일 수 있다”며 “사고 방식을 바로잡기 위해 교수와 학생이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등 학과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한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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