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존민비(官尊民卑)란 관료를 높이 보고 백성을 낮추어 보는 왕조시대의 계층의식이다. 당시 백성은 정치적으로 통치의 대상에 불과했고, 관료는 왕명을 받들어 백성을 통치하는 계층으로서 백성 위에 군림하는 게 당연했다. 관존민비 의식은 근대국가가 성립되면서 퇴색했다. 그럼에도 옛 의식의 잔영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만 해도 ‘군관민(軍官民)이 합심하여 조국 근대화에 나서자’는 식의 표현이 일상적으로 쓰일 정도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 1980년대 이래 문민정권이 수립되면서 ‘군관민’ 같은 용어도 ‘민관군’의 순서로 바뀌었다. 공무원도 점차 관료적 권위를 내려놓고 대 국민 행정서비스 종사자를 자처하는 분위기가 됐다. 하지만 표면적 변화와 달리 사회 시스템 곳곳엔 관존민비 체제가 은폐된 채 여전히 살아있다. 대표적인 게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납득할 수 없는 차별이다. 정부는 공적연금 재정위기 완화와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차별 등을 해소한다며 2015년 공무원연금을 수술했다. 그럼에도 격차는 여전하다.
▦ 유족연금만 해도 그렇다. 부부 모두 국민연금 수급자로서 부인이 월 70만원, 남편이 월 150만 원씩 받다가 남편이 사망하면, 부인은 본인연금과 남편 유족연금 등 2개 연금 수급권을 갖게 된다. 그 경우 중복조정을 해야 한다. 부인은 본인연금에 유족연금 중복 조정분을 더한 연금액과 남편 유족연금액 중 많은 걸 택일해야 한다. 이 경우 부인은 본인연금 70만원을 선택해 남편 유족연금 중복조정액(남편 생존시 연금 총액의 18%) 27만원을 더해 월 97만원을 받는 게 남편 유족연금(남편 생존시 연금 총액의 60%) 90만원만 받는 것보다 유리하다. 반대로 유족연금을 선택하면 본인연금 수급권은 포기해야 한다.
▦ 하지만 ‘공무원연금+국민연금’ 커플이면 중복조정이 없다. 그래서 위의 경우, 부인은 본인연금 70만원에 남편 유족연금 90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요컨대 부부 합산 연금액이 월 220만원으로 같더라도 남편이 사망하면 일반인 부인 연금액은 월 97만원에 그치는데 비해, 공무원 부인은 두 배에 가까운 160만원을 받는다는 얘기다. 국가부채 1,400조원 중 절반 이상인 750조원이 공무원ㆍ군인연금 충당부채라는 발표가 나왔다. 이런 황당한 관존민비 체제를 뒷받침하려고 세금 내는 건가, 하는 탄식이 없을 수 없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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