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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검문 당하는 남자

입력
2017.04.0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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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검문 한번 당해보지 않은 청춘이 있을까마는 나는 어려서부터 검문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이유는 오직 하나, 키가 컸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집 앞을 나서자마자 경찰에 붙들려 가방을 열었고, 정독도서관에 자주 가던 고등학생 시절엔 백이면 백 경찰이 보는 앞에서 소지품 검사를 당했다. 종로 쪽으로 갈 때도 검문은 끊이지 않았는데, 이유는 ‘민정당’ 당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난 것들로 가득 찼던 종로 거리를 걷는 일은 어린 내게 큰 재미였으나 그만큼 답답하고 불편한 일이기도 했다. 팔십 년대의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설계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한 1996년 겨울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카메라를 들었다가 소위 닭장차(전경버스)에 끌려갔다. 집회에 참여했다거나 시국선언을 한 게 아니라, 외교부 신축청사 현상설계 접수를 마치고 건물 스터디를 위해 주변 사진을 찍는 중이었다. 건물이 자리할 위치뿐 아니라 주변 상황들을 살펴보는 것은 건축설계의 가장 기본 단계다. 경찰은 언제부터 그리고 어디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다가 나타난 것일까. 상황을 설명해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 급기야 나는 카메라를 빼앗긴 채 전경버스로 끌려갔다. 상관으로 보이는 경찰관에게 다시 해명(대체 왜!)하고 외교부 현상설계 접수증도 보여주었다. 그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내 가방 속의 물건을 샅샅이 살폈고 카메라 필름을 압수당할 뻔했다. 그리고 설교가 시작되었다. ‘북한’과 ‘주요시설’이란 단어가 뒤섞인 엄포는 두어 시간 계속되었다. 그 후로 세종문화회관 주변에서 나는 카메라를 들어본 일이 없다. 종로와 광화문 광장을 지나칠 때면 나도 모르게 가방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최근엔 종로구청에서 평창동 사이를 자주 다니는데 이때도 검문이 끼어든다. 청와대가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앞엔 어딜 가며 왜 가는지를 설명(대체 왜!!)해야 하는 경찰이 있다. 이 과정이 탐탁찮아 늘 에둘러가는 먼 길을 선택한다. 내 불평에 평창동 건축주는 이런 이야길 들려줬다. 여자들이 탄 차량은 검문하지 않고 그냥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검문 당하는 남자’였던 것이다.

이 불편한 기억은 작년 겨울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의 열기 덕분에 누그러질 수 있었다. 광화문광장이 시민을 위한 공간이라고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수많은 이야기와 에너지가 있었다. 평범한 학생과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던 불통과 억압의 장소가 온전히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 자발적이고 행동하는 장소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희열마저 느꼈다. 그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이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의 소통과 함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장소는 사람들이 만나고 갈등하고 또 그 갈등을 해소하면서 변화한다. 광화문 광장의 변화는 나에게는 장소의 진화로 여겨졌다. 가방을 열어야 한다는 트라우마도 사라졌다.

광화문거리의 변화를 더듬어본다. 육조거리가 넓혀지고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섰다가 중앙청으로, 다시 중앙박물관으로 바뀌고, 이 건물이 해체되어 사라지면서 앞으로 밀려나왔던 광화문이 제자리를 되찾고, 넓은 도로를 나누어 광장을 만들고 거기에 촛불을 들고 200만 명이 모여든 풍경까지, 100여 년의 시간이 스쳐간다. 그리고 거기엔 세월호의 노란 리본이 3 년째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광화문 광장 너머에는 여전히 격리된 채 소통을 잊은 공간이 있다. 구중궁궐처럼 깊어 그 속을 알 길이 없었던 그곳도 변화해야 할 역사적 순간을 맞게 되었다. 검문검색이 장소의 권위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고압적인 풍경을 지우고 열려있는 소통의 공간으로 바뀌는 상상을 해본다. 광화문광장이 그러했듯이.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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