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말에 찬성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이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말입니다. ‘허튼 소리라 짜증나는데, 나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멋진 사람이니 그냥 들어는 드릴게’ 하는 쿨한 포즈를 취할 때 ‘짜잔~’ 등장하는 말입니다. 볼테르가 했다는 이 말은, 역사상 유명인물에 기대어 지나치게 극적으로 멋진 말들 대부분이 다 그러하듯, 실은 나중에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 말이 잘 먹혀 드는 건, 공감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겁니다.
법학자 제러미 월드론이 쓴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는 이렇게 인기 있는 ‘표현의 자유’에 맞서는 책입니다. 혐오표현(Hate Speech)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규정한 뒤 금지법을 만들어 형사처벌할 것을 주장합니다. 민사상 손해배상이 아니라, 형사상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아니라, 별도의 혐오표현금지법을 굳이 제정하는 건, 법 제정 그 자체가 “혐오표현은 형사적 처벌 대상”이라고 명확히 일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인종ㆍ민족ㆍ성ㆍ연령ㆍ정치적 성향 등에 대해 편견 어린 독설들을 마구 쏟아내는 ‘아무 말 대잔치’가 성대한 시대에 솔깃한 얘기입니다.
월드론의 주장은 그렇기에 시원합니다. 그래도 ‘표현의 자유’를 버릴 수 없다는 미국 자유주의 법철학의 대가인 로널드 드워킨의 주장을 두고 “소수자 집단의 개인과 가족들에게 그들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모욕적인 공격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면서까지 인종적인 존재론에 관한 날 것 그대로의 토론을 펼칠 필요가 과연 있는가”라고 쏘아붙입니다. 인종ㆍ민족ㆍ성ㆍ연령 등에 따른 혐오표현 금지는 이제 상식적인 가치인데, 민주적 토론을 빙자해 밑바닥에서부터 이 가치를 다시 따져봐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냐는 질문입니다.
논증도 흥미 있지만, 그보다 사실 책을 둘러싼 상황이 더 재미있습니다. 월드론은 영국 태생, 책 출간 시기는 2012년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집권 1기 마무리 시점, ‘티파티’로 상징되는 극우의 막말 퍼레이드 등이 떠오를 겁니다. 극우세력의 막말이 표현의 자유인가, 의아했을 겁니다. 2차 세계대전 악몽 때문에 저마다 혐오표현금지법이 있는 유럽인의 시각에서는 기괴했을 법 합니다. 이 책을 쓴 것도 “미국 사람들 대부분은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순간 논증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게 암담해서입니다. 법이 안 만들어진 걸 보면, 결국 저자의 주장은 미국 땅에서 패배했습니다. 그 이후는 다 아는 바입니다.
혐오표현에 대한 볼테르의 태도를 추측해 볼 수 있는 실제 문장은 이렇습니다. “나는 중상을 대단히 싫어하기에, 터키인들에게 우둔함을 뒤집어 씌우길 원치 않는다. 여성들에게 폭군이며, 예술의 적인 그들을 몹시 싫어하는 데도 말이다.” 나름 멋지긴 한데, 다 말해 놓고 굳이 그렇게까지 말 안하고 싶다라고 하는 건 또 뭘까요. 혐오표현금지법이 만들어진다면, 볼테르는 처벌 대상일까요, 아닐까요.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