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궁금했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탄핵무효집회에서 국민저항본부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정광용씨가 참가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당시 얘기다. 그는 자신을 연호하는 사람들에게 “지난 집회에서 3명의 사망자가 있었는데, 경찰청장의 모가지가 아직 붙어 있다”고 우렁차게 말했다. 박수가 쏟아졌고, 그의 표정은 의기양양했다.
궁금함의 이유는, 서울 도심의 개방된 광장에 등장한 그 사람이 엄연히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 할 피의자라는 점이었다. 자신이 말한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지난달 10일 폭력으로 물든 헌법재판소 앞 집회를 선동한 혐의로 경찰로부터 출석 요구를 받은 터였다. 경찰의 출석 요구를 우롱이나 하듯 공개된 장소에 나와 ‘경찰청장의 모가지가 아직 붙어있다’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경찰이라는 공권력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하고 잠자는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경찰에 갈 시간이 있겠습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바쁜데 오라 가라 한다’는 뜻이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 공권력을 무시한 건 비단 정씨뿐이 아니다. 지난 4일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정 대변인이 속한 국민저항본부가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이 방치한 탓에 (10일 시위자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경찰 버스를 탈취해 차벽으로 돌진하려던 시위자 때문에, 차량에서 떨어진 대형스피커를 맞고 숨진 사실이 명백한 상황에서, 적반하장 격으로 경찰 책임을 들먹였다.
일각에선 이상하리만치 당당한 이들 행보 뒤엔 유독 보수집회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던 경찰이 있다고 지적한다. 경찰이 자초했다는 얘기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11월 1차 탄핵반대집회가 시작되면서 많은 시민들과 기자들이 폭행당했지만 경찰의 엄단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사망자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한 달 가까이, 경찰청장이 직접 “폭력시위 주동자에 대해 엄중히 사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한 지도 3주나 흘렀지만 조사조차 한 번 못했다. “촛불집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잣대를 들이댔을지 의문”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공권력의 권위는, 경찰의 신뢰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잣대를 들이댈 때 비로소 얻어진다. 경찰은 일단 정씨에 대해 10일까지 출석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강제 소환하겠다고 공언했다. 경찰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겠다는 의지가 있는 건지, 다음 행보를 지켜볼 참이다.
신은별 사회부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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