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은 같은 한반도에 있지만 시차가 난다. 북한이 30분 느리다.
평양 현지시간으로 5일 오후 5시53분, 김일성경기장 장내 아나운서가 차분하게 외쳤다. “관람자 여러분, 인디아 팀과 대한민국 팀 선수들이 입장하겠습니다.”
태극기가 인도 국기, 아시아축구연맹(AFC) 깃발과 함께 그라운드에 등장했다. 아나운서는 “대한민국 국가를 연주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북한 축구의 성지로 불리는 김일성경기장에 처음으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이날 평양에는 오전부터 줄기차게 비가 내렸다. 그럼에도 앞서 열린 북한과 홍콩의 여자 아시안컵 예선 2차전(북한 5-0 승)에 1만3,500여명이 입장했다. 이들 중 5,000여명이 남아 한국 경기를 지켜봤다. 인도 국가가 울릴 때 기립한 관중들은 애국가가 연주될 때도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그라운드를 지켜보며 예의를 다했다.
윤덕여(56) 감독이 이끄는 여자대표팀이 평양에서의 첫 경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국은 이날 B조 1차전에서 인도를 맞아 10-0 대승을 거뒀다.
이번 대회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7위 한국과 10위 북한을 비롯해 인도(56위), 홍콩(65위), 우즈베키스탄(42위)이 풀 리그를 펼쳐 1위만 아시안컵 본선에 나간다. 다른 팀에 비해 남북한의 전력이 월등해 7일 예정된 남북전이 중요하다. 한국이 북한을 누르면 사실상 진출 확정이고 비기면 골득실을 따져야 한다.
강유미(26)가 전반 11분 인도의 밀집수비를 뚫고 첫 골을 터트리며 분위기를 끌어올렸고 이민아(26)의 추가골과 이금민(23)의 연속골 등을 합쳐 전반에만 5-0으로 달아났다. 이틀 전 북한이 인도를 8-0으로 이긴 걸 의식한 듯, 윤덕여호는 다 득점을 위해 사력을 다했다. 골을 넣은 뒤에도 볼을 바로 하프라인에 갖다 놔 인도의 빠른 킥오프를 유도했다. 후반에도 한국은 5골을 추가했다. 이금민은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유영아(29), 지소연(26), 이은미(29) 등도 골 맛을 봤다.
경기가 시작되자 북한 응원단은 인도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1장뿐인 본선 티켓을 놓고 남북이 경쟁하는 구도를 의식한 듯 했다. 인도 선수들이 가끔 하프라인을 넘어 공격하면 “(패스를) 반대로” “(앞으로) 나가라” “(상대 선수와) 붙으라” 등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실력이 워낙 처지는 인도 선수들이 곧바로 볼을 빼앗기자 너무 못한다는 듯 허탈한 웃음이 들렸다. 한국이 상대 골망을 흔들 때마다 “아…”하는 탄식이 흘렀지만 야유나 비난은 없었다. 전반이 끝나자 관중 절반 정도가 빠져나갔고 나머지 2,500여 명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후반 초반 인도 골키퍼가 같은 팀 선수의 백 패스를 잡는 실수를 해 간접프리킥을 주자 “문지기가 멍청 하구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장내 아나운서는 “대한민국의 7번 리민아 선수가 득점 했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익히 알 듯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경기장 내에서는 금연이 철저하게 지켜졌다.
윤덕여 감독은 북한이 인도를 8-0으로 누른 것과 비교하며 “오늘 넣은 한 골 한 골이 아주귀중할 것이다”고 선수들을 칭찬했다. 1990년 남북통일축구 뒤 27년 만에 평양을 방문한 소감에 대해서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친절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7일 오후 3시30분 벌어질 남북 대결이 사실상 결승이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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