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체 2900여건 적발
젊은 여성층이 74%나 차지
10%포인트 이상 증가
사회 진출 빨라 목돈 있고
‘약하다’는 통념에 표적 삼아
인천에 사는 회사원 A(28ㆍ여)씨는 2월 초 은행 예금 6,600만원을 수표로 출금한 후 다른 은행에서 달러로 바꿔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고스란히 넘겨줬다.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을 사칭한 남성이 “A씨 명의로 대포통장이 개설됐으니 혐의를 벗으려면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넘기라”고 하자 따른 것이다. 경찰은 “뻔한 수법인데도 사기꾼이 전문 법률용어까지 구사하자 수표 출금, 달러 환전 등 비상식적인 요구까지 믿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B(27ㆍ여)씨는 최근 보이스피싱 피해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금융당국을 사칭한 사기꾼들이 현금인계 장소를 두 번이나 바꿨지만 의심하지 않았다. 사정을 전해들은 B씨 어머니가 급히 112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적금 1,900만원을 뺏길 뻔했다. 범인들은 현장에서 붙잡혔다.
흔히 ‘보이스피싱=노인대상 범죄’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정보 및 사회관계망 부족, 관(官)자가 붙은 권위에 대한 맹신, 가족애 등 노인들의 취약점을 노린 대표적 범죄가 보이스피싱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지난해 정부기관 사칭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는 2030, 그것도 여성이 열에 일곱으로 압도적이었다. 범죄의 주 타깃이 20, 30대 젊은 여성으로 옮겨간 셈이다.
5일 경찰청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6년 수사기관 또는 금융당국 사칭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2,922건으로, 이중 74%(2,152건)는 20, 30대 여성이 피해자였다. 피해 액수도 전체(247억원)의 71%를 차지했다. 2030 여성 피해자는 2015년(63%)보다 10%포인트 이상 늘어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방지 홍보 등을 통해 전체 범죄는 줄었지만 젊은 여성들이 피해를 당한 비중은 오히려 늘었다”고 설명했다. 쉬운 상대로 여겨졌던 노인층은 다양한 예방활동 덕에 일종의 면역이 생겼다는 얘기다.
경찰은 20, 30대 여성의 특징에 주목한다. ▦남성보다 사회 진출이 빨라 저축 등으로 목돈을 마련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회초년생이라 범죄에 대한 의심이 적다 ▦일단 범죄 현장으로 끌어들이면 물리력으로 제압이 쉽다 등이다.
특히 시중은행들이 어지간한 사기수법은 간파하고 있어 계좌 간 이동은 거의 막거나 바로 신고하는 상황이라, 사기꾼들이 직접 피해자를 만나 현금을 빼앗는 식으로 범행수법을 바꾼 게 젊은 여성들에겐 위험 요소다. “현장에서 발각되더라도 힘으로 돈을 뺏기 쉬운 대상”이라는 것이다.
의심이 드는 부분은 인터넷 등에서 각종 정보를 파악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인하면 애초 범죄에 휘말리지 않을 법도 하지만, 식자우환이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도 곁들여진다. 일선 경찰은 “나이가 젊고 스스로 전문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권위와 지식정보를 갖춘 것처럼 포장한 사기범이 접근할 경우 되레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