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행정직원 정모(51)씨는 2015년 1월 22일 퇴근길에 차를 몰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에서 우회전을 하다 직진하던 택시와 부딪혔다. 거리가 충분한데도 택시가 멈추지 않고 부딪혔다는 ‘고의 사고’에 대한 의심이 들긴 했지만, 경찰서를 오갈 경우 근무지에 통보되는 등 공무원으로서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꾹 참고 보험처리로 합의를 했다. 치료비와 차량 수리비 등 합의비용으로 440만원이나 줘야 했지만, ‘재수가 없는 날이려니’ 했다.
지난해 11월 24일 정씨는 퇴근을 하다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식으로 택시와 부딪혔다. 택시에서 내린 기사는 공교롭게도 지난번 사고 때 합의금을 받아간 서모(39)씨였다. 합의를 하자는 택시기사의 말을 들으며 정씨는 고의 사고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서씨는 2013년 2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총 25번에 걸쳐 고의 사고를 내고 총 4,600만원의 합의금을 받아낸 상습범인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불법유턴이나 진로변경 위반 등 교통법규를 위반한 차량이 표적이었다. 특히 대법원 앞 4건, 강남세무서 앞 3건, 한국전력 앞 2건 등 공무원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경찰은 “공무원들이 신고를 꺼리는 점을 적극 악용해 사고를 내고 합의금을 뜯어내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씨는 합의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 사고가 날 때마다 목이나 허리가 아프다며 4, 5일간 입원하기도 했다.
서초경찰서는 서씨를 사기 및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달 31일 구속했다고 5일 밝혔다. 서씨는 경찰 등에서 “우연의 일치고 사고는 다 상대방 책임”이라며 범행을 일체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고의성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5~10건 정도의 사고에 대한 수사도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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