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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의 독사만필] 산림녹화와 식목의 혜택

입력
2017.04.0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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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4월 초, 나리타 공항에서 리무진버스를 타고 도쿄 시내로 들어가며 바라본 농촌풍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산은 검푸른 숲으로 덮였고, 들은 바둑판처럼 가지런히 나뉘었다. 농가는 대궐처럼 컸고 포장된 농로에는 작업차가 여기저기 서 있었다. 몇 시간 전까지 나의 뇌리에 박혀 있던 한국의 헐벗은 산야와 비뚤배뚤한 논두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거짓임을 깨닫자 잔잔한 슬픔과 분노 그리고 부러움이 밀려왔다.

시골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산과 들에 얽힌 고달픈(?) 추억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늦가을이면 학교 근처 산에 올라 풀씨를 훑었다. 숙제였다. 전교생이 모은 풀씨는 허옇게 맨살이 드러난 야산에 뿌려졌다. 땅이 너무 거칠어 나무를 심어도 자랄 수 없기 때문에 풀이라도 돋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중학교 때는 3월 하순을 전후하여 한 달 동안 일요일마다 동네 근처 산에 나무를 심었다. 어른들 틈에 섞여 구덩이를 파고 물을 퍼붓는 일은 무척 고되었다. 집집마다 정해진 순번에 따라 산을 돌아다니며 타동 사람들이 땔감을 채취하는 것을 막았다. 학교에 가서도 가끔 송충이 잡이에 동원되었다. 초급장교 시절에는 초봄 한 달 가량 대대 단위로 야영을 하며 사방공사와 식목작업을 했다. 모래가 뒤덮인 산기슭에 떼를 입히고 자갈이 널린 개활지에 나무를 심은 것이다.

그 후 30여 년이 흘렀다. 요즘도 한 해 몇 번 일본에 가서 산야를 보지만 처음과 같은 슬픔이나 분노 또는 부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한국의 산야도 제법 우거졌고 들판도 반듯하게 정리되었다. 게다가 나만 풀씨를 훑고 사방을 하고 나무를 심고 송충이를 잡고 순산(巡山)을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월간 잡지 <산림>(1972년 3월호)은 경기도 평택군 칠원1리 산림계의 활동을 이렇게 소개했다. “해마다 산사태로 소동을 빚는 임야에 리기다 소나무와 오리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정성 들여 심어진 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전 동리의 동민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윤번으로 순산을 어김없이 실시하니 산에는 싱싱한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게 되었고 연년에 겪던 홍수와 가뭄의 피해가 차차 없어지기에 이르렀다.” 온 국민이 산림녹화에 나선 셈이다.

내가 본 1960ㆍ70년대 한국의 산야는 참으로 황량했다. 곳에 따라서는 마치 사막과 같았다. 그런데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는 1982년 보고서에서 벌써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개발도상국가”라고 썼다. 한국의 남녀노소가 질풍노도(疾風怒濤)처럼 실행한 사방공사와 식목작업이 산림녹화로 귀결되리라는 점을 정확히 평가했다. 이런 자료를 읽으면 청소년기의 고달픈 추억은 아련한 자부심으로 바뀐다. 그리고 금수강산을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린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2003년 8월 중순 나는 평양과 묘향산 그리고 백두산 일대를 방문했다. 평양에서 묘향산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다본 북한의 산야는 내가 청소년기에 접한 풍경과 너무나 닮았다. 마침 전날 폭우가 내려 논밭은 모래와 자갈이 쓸어버렸고, 한여름인데도 야산은 푸른 수풀이 듬성듬성할 뿐이었다. 이튿날 돌아올 때 보니 넘칠 듯 기세를 부리던 청천강의 물은 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산야에 초목이 없으니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이다. 나는 북한도 우리처럼 남녀노소가 산야로 달려가 떼를 입히고 나무를 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헐벗은 산야를 푸르게 만든 우리의 경험과 지혜를 더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그러면 북한주민의 생활과 마음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다.

어제가 식목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무를 심고 가꾸자는 말을 거의 듣지 못하니 매우 허전하다. 그래서 나는 제2의 산림녹화운동을 벌일 것을 제안한다. 지금 한국을 덮고 있는 초목은 대부분 늦가을부터 늦봄까지 줄기가 말라버리고 잎이 떨어진다. 그리하여 한국의 산야는 반년 동안 누렇게 변해 숲이 우거졌어도 황량하게 보인다. 녹음이 사철 우거지면 산야만 살찌는 게 아니고 인심도 넉넉해진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나는 낙엽수를 상록수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30년 후를 내다본 국토와 국민의 개조사업이라고 확신한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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