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4.6
지난 해 세상을 뜬 뮤지션 중에는 데이비드 보위, 프린스 외에도 ‘컨트리 뮤직의 전설’ 멀 해거드(Merle R. Haggard)가 있었다. 그는 1937년 4월 6일 태어나, 79세 생일이던 2016년 4월 6일 별세했다. 역사상 가장 강렬한 전쟁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베트남전 3부작 1편 ‘플래툰’의 마지막 장면, 네이팜 탄으로 불바다가 된 전장을 나는 군 수송헬기의 프로펠러 소음을 덮듯 흐르던 배경음악 ‘오키 프롬 머스코기 Okie from Muskogee’의 그 가수다.
‘머스코기에서는 마리화나도 LSD도 하지 않고, 큰길에서 징집영장을 태우는 짓도 하지 않지… 샌프란시스코 히피들처럼 머리카락 치렁치렁 너절하게 기르지도 않으며… 머스코기 출신 오키란 걸 자랑으로 여기지.’ 오키(Okie)는 1930년대 대공황기에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 등 대도시로 이주한 오클라호마 출신 농업노동자들을 일컫는 말. 원래는 ‘촌놈’처럼 조롱 섞인 말이었지만, 그들은 ‘방탕한’ 진보ㆍ자유주의자들과 달리 윤리와 전통을 중시하는 중남부 보수주의자들의 자부심을 저 단어에 입혔다. 1969년 해거드가 저 노래를 발표할 무렵은 베트남전 반대운동이 활발했고, 포크 가수들의 반전 평화 노래들이 거리를 휩쓸던 때였다. 해거드의 저 경쾌하고 반듯한 노래는 이를테면 반전운동에 대한 보수ㆍ애국주의자들의 ‘성가(聖歌)’였다. 평화주의자 올리버 스톤이 영화 끝 배경음악으로 저 노래를 택한 건, 일종의 아이러니였을 것이다.
해거드는 34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오키의 3형제 중 막내로, 베이커스필드 외곽 컨테이너 집에서 태어났다. 45년 아버지가 뇌출혈로 숨진 뒤 어머니가 가족을 부양했고, 어린 해거드는 절도와 폭력 등으로 청소년 교화시설을 들락거렸다. 형이 쓰던 기타를 독학해 연주하고 노래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지만, 그 취미를 직업으로 택한 건 강도 혐의로 감옥살이까지 한 뒤인 1960년이었다.
그런 그의 이력 탓에 69년 저 노래가 발표되자 ‘진의’를 두고 말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2001년 인터뷰에서 “당시 못 배운 미국인들의 진솔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했고, “나보다 그 전쟁에 대해 모르는 시위대들의 주장에 화가 나기도 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클린턴과 오바마를 위해 노래한 민주당 지지자였고, 40대 때부터 거의 말년까지 마리화나를 즐겼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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