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6차전에서 중국에 무릎을 꿇으며 엄청난 비난을 받긴 했지만 ‘공한증’은 한국 남자 축구의 자랑스러운 기록(역대전적 18승12무2패) 중 하나다. 반대로 여자 축구에는 ‘공북증’이 있다. 한국 여자대표팀은 북한과 17번 만나 단 1번만 이기고 2번 비기고 14번을 졌다. 한국 여자축구는 동북아 4개국 중 가장 발전이 더뎠다. 여자대표팀을 처음 꾸린 게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이다. 당연히 일본(4승9무14패), 중국(4승5무25패)과 상대 전적도 열세다. 그래도 일본, 중국은 4번씩 이겼는데 유독 북한에는 약했다.
최근에 열린 남북전 중 가장 아쉬운 경기 중 하나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준결승이 꼽힌다.
한국 여자축구는 안방에서 ‘공북증’을 깨고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나섰다. 전반 초반 정설빈(27ㆍ인천현대제철)의 프리킥 선제골로 앞서갔다. 한국은 전반 36분 동점골을 내줬지만 이후에도 사정 없이 북한을 몰아쳤다. 당장이라도 두 번째 골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경기 전 완승을 자신했던 김광민 북한 감독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졌다. 하지만 후반 추가시간 통한의 역전골을 허용하며 눈물을 흘렸다.
수비수 임선주(27ㆍ인천현대제철)의 결정적인 실수가 빌미가 됐다. 뒤에서 길에 넘어온 볼을 머리로 걷어내려다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이 볼을 받아 북한 허은별이 텅 빈 골문에 가볍게 득점을 성공했다. 곧바로 경기는 끝났다. 휘슬이 울리자 한국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특히 임선주의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윤덕여(56) 여자대표팀 감독도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그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 저도…”라며 눈물을 비쳤다. 다음 날 새벽 1시30분 경 윤 감독의 휴대폰이 울렸다. 임선주의 카카오톡이었다. ‘죄송하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제 실수 하나 때문에 졌다’는 장문의 메시지였다. 윤 감독은 ‘오히려 난 네가 자랑스럽다’ 답장을 보내 제자를 다독였다.
3년이 흘렀다.
임선주는 7일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리는 북한과 여자 아시안컵 예선 2차전을 벼르고 있다. 인천에서 흘린 ‘눈물’을 평양에서 씻겠다는 각오다. 그는 4일 김일성경기장에서 훈련하기 전 취재진과 만나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내 실수 때문에 북한에 졌다. 지금 생각하면 추억이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더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윤덕여호에는 북한에 유독 강한 선수도 있어 기대를 모은다.
공격수 정설빈이다. 그는 인천아시안게임에 이어 작년 2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최종예선 1차전(1-1 무) 때도 기선을 잡는 선제골을 터뜨렸다. 북한을 상대로 4경기에 나서 2골을 기록 중이다. 정설빈은 “북한과 경기할 때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자신감을 앞세우고 임하겠다”고 의욕을 드러냈다.
평양=공동취재단ㆍ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