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12ㆍ가명)는 각종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영어 영재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들었고 18개월에 영어 책을 보기 시작, 두 돌부터 영어유치원에 다닌 결과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다른 친구들과 다투는 일이 잦아졌고 어울리는 것도 꺼려했다. 대학병원 소아정신과에서의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현우의 대뇌변연계, 그 중에서도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기저핵 부분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친구들과의 다툼, 무기력증은 이 뇌 손상으로 인한 것이었다. 주치의는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다.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 과도한 자극, 즉 문자 학습 등에 노출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고, 신경세포 발달을 억제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4일 서울시교육청 중부교육지원청이 서울 중구구민회관에서 개최한 유치원 학부모 연수 ‘유아 뇌 발달과 적기 교육’에서 과학저널리스트인 신성욱 강사가 소개한 사례다. 신 강사는 다큐멘터리 제작 PD 출신으로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 등의 저서를 쓴 작가다. 최근 선행학습 대신 아이 발달에 맞춰 다양한 놀이와 체험을 하도록 하는 ‘적기(適期)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날 학부모들은 준비된 300여석을 꽉 채웠고 우는 어린 자녀를 서서 달래면서도 끝까지 메모를 하며 강의를 듣는 등 열기가 가득했다.
신 강사는 ‘만 3세에 뇌 발달이 대부분 이뤄진다’는 것은 “이미 폐기된 가설”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많은 영유아 교재업체들은 “3세 때 이미 성인 뇌의 80% 이상이 형성된다”며 하루속히 자녀에게 교육을 시키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7년 보고서(뇌의 이해)에서 3세에 뇌가 거의 결정된다는 것은 대표적인 ‘신화’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신 강사는 “3세에 거의 완성된다는 것은 1980년대까지 과학자들의 가설이었다”며 “이후 뇌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컴퓨터단층촬영(CT) 등 기술 발달로 뇌를 볼 수 있게 되면서 이제는 과학자들은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부모들 사이에 아직도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사교육업체들의 마케팅 때문이다. 신 강사는 “지난 20년간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유아들의 뇌에 대해 얘기한 사람들을 분석해보니 의사나 과학자가 아니라, 대부분 사설학원장 등이었다”고 지적했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도 이날 자료를 내고 뇌 발달이 3세에 완성된다는 업계의 마케팅을 반박했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유아기에 아이 뇌를 자극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부모의 스킨십이고, 그 다음이 충분한 수면이다. 또 3~6세에는 인간의 종합적인 사고 기능과 도덕성 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발달하기 때문에 인성과 동기 부여 중심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게 뇌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사교육걱정은 "학부모가 검증하기 힘든 교육 담론으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영유아 교재 업체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는 등 잘못된 유아교육 담론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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