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기 전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활짝 피어 있는 순간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는 못 배긴다. 심지어 꽃이 지는 순간마저 흩날리는 꽃잎은 황홀하다. 벚꽃의 계절이 돌아왔다. ‘여의도벚꽃축제’ ‘석촌호수 벚꽃축제’를 비롯해 4월 첫 주부터 전국 각지에서 벚꽃 축제가 줄을 잇는다. 꽃 구경 갈 때 손에 쥐어가라는 듯 각종 한정판 ‘벚꽃 술’이 등장했다. 벚꽃 맥주, 벚꽃 소주, 벚꽃 와인, 벚꽃 막걸리… 벚꽃을 맛 본 적은 없지만 봄을 만끽하고픈 우리는 분홍색으로 단장한 음료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보기 좋을수록 맛도 좋은 건 떡뿐만 아니라 맥주도 마찬가지라 외치면서.
눈으로 먼저 즐기는 벚꽃 술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벚꽃 특수에 더 기댄다. 각종 벚꽃 패키지 상품 역시 일본에서 건너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맥주 대표주자 아사히와 기린은 봄이 되면 벚꽃 맥주를 한정판으로 내놓는다. 맥주 캔에 흩날리는 벚꽃 잎을 그렸다. ‘클리어아사히 벚꽃축제’는 자몽과 오렌지 향이 나는 시트러스홉과 캐스케이드홉을 사용해 상큼한 맛과 화려한 향을 입혔다. 기린의 ‘벚꽃 스페셜 에디션’은 보는 즐거움만 강조한 제품으로 맛은 기존 맥주와 동일하다.
유럽에서 건너온 벨기에의 호가든 맥주는 체리맛을 출시했다. ‘호가든 체리’는 발효된 밀맥주에 천연 체리 과즙과 체리 시럽을 가미해 색깔도 붉은 빛이 돈다. 자세한 레시피는 ‘영업기밀’이다. 이들 맥주 도수는 기존 맥주와 동일하다.
벚꽃 맥주는 이름은 벚꽃이지만 맛은 벚꽃과 무관하다. 실제 벚꽃이 들어간 술은 소주와 와인으로 맛봐야 할 듯하다. 국내 주점 프랜차이즈인 ‘달달데이’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벚꽃 잎을 숙성시킨 원액과 소주를 섞어 만든 ‘벚꽃소주’를 판매한다. 일본 야마나시현 가쓰누마에 위치한 시라유리 양조에서는 화이트 품종과 레드 품종을 섞은 로제와인에 벚꽃을 띄워 만든 벚꽃 와인을 생산한다. 수입사인 나라셀라에 따르면 3~4월 2,000여병만 수입하는데 기간 내에 완판된다.
혹시 술을 싫어한다면? 무알콜 벚꽃 음료도 있으니 아쉬워 마시길. 스타벅스가 지난달 내놓은 체리블라썸 음료 제품은 출시 직후 베스트셀러 메뉴에 등극했다. 벚꽃 잎이 함유된 파우더를 넣었다. 유통업체 GS리테일은 ‘유어스벚꽃스파클링’이라는 가벼운 음료를 내놨다. 벚꽃 추출액과 벚꽃향을 원재료로 넣은 탄산 음료다. 30만개 한정수량을 생산했는데 지난달 24~26일 3일간 8만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분홍빛 술, 예쁜 포장지보다 더 매력적인 건 사실 ‘한정판’이라는 말이다. 타인이 하지 못한 것을 경험해봤다는 만족감을 위해, 이왕 돈을 쓴다면 희소성 있는 곳에 쓰겠다는 소비자를 겨냥한 한정판 마케팅은 효과를 톡톡히 본다. 한정판을 구하지 못했지만 365일 예쁜 술을 마시고 싶다면? ‘템트’, ‘더라스트스트로베리’ 등 여러 꽃이 화려하게 장식된 주류 음료가 있다. 날이 따뜻해지는 봄부터 판매량이 증가해 여름에 정점을 찍는다.
벚꽃은 무슨 맛?
벚꽃 잎 흩날리는 동화 같은 포장지 구경을 마쳤다면 벚꽃이 대체 무슨 맛인지 알아봐야 할 차례. 한국일보 기자 넷이 마셔본 결과 ‘벚꽃 맛’ 술과 음료는 상큼한 맛, 복숭아 맛, 설탕 맛 등으로 정리됐다.
◆호가든 체리
“체리맛 사탕이 김빠진 맥주에 빠진듯한 맛”(기자 1), “체리 분말 가루 한 봉지 털어 넣은 듯”(기자 2)
◆클리어아사히 벚꽃축제
“맛, 향 모두 괜찮지만 보들보들한 아사히 맥주치고 의외로 쌉쌀하다”(기자 2), “은은한 향이 가미됐지만 ‘과일 맥주’의 시원함이나 향긋함 모두 애매함”(기자 3)
◆기린 벚꽃 에디션
“이것저것 섞어 봤지만 맥주는 역시 기본이 제일 좋다는 결론에 도달“(전원)
◆벚꽃소주
“시중에 나온 과일 소주보다 부드럽고 인위적이지 않은 맛”(기자 1) “소개팅에서 어울릴 만한 달지 않은 소주”(기자 2) “한 입은 상큼하고 한 입은 화장품 맛”(기자 3)
◆유어스벚꽃스파클링
“달고 시원해 다른 스파클링 음료에 비해서도 경쟁력 있을 듯”(기자 2) “복숭아 스파클링이라고 불러야 할 듯”(기자 3)
상상했던 것만큼 긍정적인 결과가 아닌 건, 벚꽃 아래가 아닌 칙칙한 회의실에서 시음회를 한 탓일 수도 있다. 그래서 벚꽃 술을 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판매처에서 추천하는 각 주류 별 안주를 소개한다.
◆상큼한 맛과 화려한 향이 특징인 ‘클리어아사히 벚꽃’은 술만 마시거나 봄 제철 야채와 함께하면 단맛을 살릴 수 있다.(롯데아사히주류).
◆’호가든 체리’는 달지 않다. 특유의 맛과 향을 해치지 않는 신선한 계절 과일 혹은 치즈 안주가 제격이다. 달콤한 디저트와도 잘 어울린다(오비맥주).
◆기린 ‘벚꽃 스페셜 에디션’ 맛은 기존 기린 맥주와 같다. 맥주엔 역시 치킨(하이트진로)!
◆벚꽃소주는 단 맛이 강한 술, 오돌뼈와 닭발 같이 매운 안주가 어울린다. 야외에서 마시면 맛이 두 배가 더하게 될 것(달달데이).
◆벚꽃와인은 달콤한 케이크나 파이가 어울리고, 샌드위치나 파스타 등 가벼운 식사와 함께 해도 좋다(나라셀라).
벚꽃 맛의 확장은 계속된다. 스타벅스는 벚꽃 케이크를 내놨고, GS리테일에선 벚꽃버거가 나왔다. 서울 공덕역 인근 카페 ‘마카롱롱롱’에선 말린 벚꽃 잎을 올린 벚꽃 마카롱이 입소문 났고, 부산의 ‘초량카페’에서는 벚꽃 청으로 만든 벚꽃 우유를 판매한다. 봄을 맞이한 사람들은 딸기맛 마카롱믹스를 구입해 분홍빛 벚꽃모양 마카롱을 직접 만든다. 누구나 한번쯤 먹어보고 싶어 한다는 벚꽃 초콜릿(로이스, 킷캣)은 아쉽지만 일본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유독 봄날 벚꽃 마케팅에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벚꽃을 직접 보러 갈 여유가 없다는 현실의 반영 아닐까. 오늘만큼은 하던 일을 접어두고, 벚꽃 포장지가 아니어도 좋으니 맥주 한 캔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가보길 제안한다. 맥주 캔이 제 아무리 예뻐도 진짜 꽃에 비할 순 없을 테니.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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