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하면 제일 잘 할 것 같았는데...안철수 후보가 한 풀어달라”
‘저녁이 있는 삶’ 슬로건은 각인
정작 본선 진출 세 번 모두 좌절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또다시 대선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손 전 대표는 2007년 이후 대선 정국이 펼쳐질 때마다 여야를 넘나드는 대선 후보 0순위로 꼽혔다. ‘저녁이 있는 삶’ 등 대선 슬로건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하지만 세 번의 도전 모두 경선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정작 후보가 된 적은 없다. 불운이 이어진 탓도 있다. 정치적 결단의 순간마다 대형 이슈가 터지는 ‘손학규 징크스’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손 전 대표는 4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대통령선거후보자 선출대회 대전ㆍ충청지역 순회경선 연설에서 “이제 국민의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끝났다. 안철수 후보 축하한다”며 최종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일찌감치 경선 패배를 인정했다.
후보 선출 후 연설에서는 지지자들을 향해 “손학규한테도 표를 좀 주시지, 20%도 안 된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라며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저 손학규 사실 국민의당 후보가 되고 싶었다. 제가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제가 하면 제일 잘할 것 같았다”며 “안철수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제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했다.
손 전 대표는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 손에 이끌려 정계에 입문한 이후 보건복지부장관, 경기지사를 거치며 승승장구 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한나라당 예비대선 후보 빅3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젊은 시절 민주화ㆍ노동운동에 헌신했던 자신의 정치적 소인을 지키겠다며 한나라당을 탈당해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에 패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저녁이 있는 삶'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에 도전했지만, 문재인 후보에게 모바일 투표에서 밀렸다. 전남 강진에서의 2년2개월간의 토굴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10월 정계에 복귀, '7공화국' 건설을 위해 세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안철수 전 대표의 벽을 넘지 못했다.
손 전 대표는 이날 만감이 교차하는 듯 연설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목소리가 깊이 젖어 들었다. 손 전 대표는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실로, 우리 모두의 꿈입니다”라며 사실상의 작별인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함께 잘사는 꿈, 경제 성장하고 정의롭게 분배해서 함께 잘사는 나라, 일하고 싶은 사람 누구나 일할 수 있는 나라, 아이 낳고 키우는 게 행복한 나라, 노후가 편안한 나라, 전쟁의 위협 없이 평화롭게 통일을 바라보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동안 정치적 고비에서 여론의 조명을 받아야 할 순간, 공교롭게도 대형 이슈가 터져 국민의 관심 밖으로 밀려는 정치적 불운이 잇따르기도 했다. 2006년 대선 도전을 앞두고 기획한 ‘100일 민심대장정’에 나섰지만, 마지막 날 북한의 1차 핵실험이 터지면서 빛을 보지 못했다. 2016년 10월 정계복귀와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전격 선언한 날은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해 재를 뿌렸다. 지난 2월 국민의당 입당 발표 때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컨벤션 효과를 얻지 못했다.
손 전 대표는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역사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저 손학규,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꿈을 꿉니다. 아니 더 큰 꿈을 꾸겠다”며 “지치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겠다. 멈출 수도 없다. 국민이 승리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대전=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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