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물 배낭 매고 전동차서 자폭
키르기스 출신 20대 용의자 지목
폭탄에 쇳조각 등 넣어 피해 키워
시리아서 이슬람 무장세력 공격
푸틴 대테러 전략 흔들려 한 듯
“IS 가담 후 귀국한 인물들 주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겨냥한 이슬람 급진세력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지하철 폭탄 테러가 과격 이슬람단체와 연관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푸틴 대통령의 대테러 전략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4일 키르기스스탄 보안당국을 인용해 “지하철 폭탄 테러 용의자는 키르기스 오슈 지역 출신의 1995년생 아크바르존 드자릴로프”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도 드자릴로프를 시리아 반군과 연계된 유력 용의자로 특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은 “용의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6년 넘게 거주한 러시아 국적자”라며 “수사당국이 시신 수습과 신원 확인을 마쳤다”고 전했다. 경찰은 드자릴로프가 사건 당일 배낭에 폭발장치를 소지하고 지하철에 탄 뒤 자폭한 것으로 보고 있다. 폭탄 테러는 전날 오후 2시40분쯤 상트페테르부르크 센나야플로샤디역과 테흐놀로기체스키 인스티투트역 구간을 운행하던 지하철 객실에서 일어났다. 현재까지 사망 및 부상 인원은 각각 14명, 50여명으로 집계됐으나 중상이 많아 희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당국은 터지지 않은 폭발물이 들어있는 가방을 상트페테르크부르크의 또다른 역에서 찾았으며 감식 결과 여기서 드자릴로프의 DNA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테러 면면을 보면 푸틴 대통령을 타깃으로 삼은 게 분명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의 고향인데다, 사건 발생 당시 그는 시 외곽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던 중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형 테러도 처음이다. 또 이날 사진이 공개된 폭발물은 작은 소화기 안에 쇳조각, 유리 파편 등을 넣어 만든 사제폭탄이었다. TNT 폭약 200~300g 수준인 폭탄의 위력 자체는 크지 않으나 폭발과 함께 내용물이 사방으로 튀면서 살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영국 국내정보국(MI5) 관리를 지낸 애니 마숑은 러시아 국영방송 RT와 인터뷰에서 “정권 심장부에 타격을 주기 위한 ‘홍보성(PR) 테러’ 전략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아직 테러 배후를 자처한 세력은 나타나지 않았으나 연방보안국(FSB) 등 러시아 수사당국은 체첸 분리주의 반군과 이슬람 수니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 두 곳을 용의선상에 올려 놓고 있다. 푸틴은 그 동안 “변소에 숨어있는 테러리스트들까지 모두 소탕하겠다”며 체첸 반군에 극도의 적대감을 드러내 왔다. 도모데도보 국제공항(2011년), 모스크바 극장(2002년), 모스크바 지하철(2004년) 등 러시아에서 발생한 주요 테러도 체첸 반군의 소행이었다. 영국 가디언은 그러나 “2013년 반군 지도자 도쿠 우마로프가 살해된 이후 체첸 무장세력의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며 가능성을 낮게 봤다.
때문에 IS 소행설에 보다 무게가 실리고 있다. 개연성은 충분하다. IS는 푸틴 대통령이 2015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지원할 목적으로 공습을 개시하자 러시아의 내전 개입을 비난하며 협박 영상을 수차례 공개했다. 실제 그해 10월 이집트 시나이반도에서 추락해 탑승자 224명 전원이 사망한 여객기 사고도 IS가 저지른 참극이었다. 영국 BBC는 “시리아로 들어가 테러 훈련을 받은 러시아인 7,000명 중 일부가 귀국했다”며 이들이 테러를 주도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심지어 “러시아가 미국을 제치고 IS를 비롯한 이슬람 급진주의의 최대 표적이 됐다(폴리티코)”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테러 현장을 찾아 별다른 언급 없이 희생자들에게 헌화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테러리즘이라는 악마에 함께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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