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4.5
우리는 월터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1995)’의 포카혼타스(Pocahontas, 1595?~1617)의 이미지와 실제의 그가 얼마나 유사한지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인디언 유력 부족장의 딸인 그가 영국인 백인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영국으로 건너가 근사한 대접을 받은 뒤 고향 버지니아로 돌아오려던 참에 이질(천연두)에 걸려 22세(?)로 숨졌다는 건 아마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결혼과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이 영화에서처럼 신분과 피부색을 초월한 로맨스만도 아니었고, 토착민과 이주민의 평화의 상징으로 여길 수만도 없다는 주장도 있다. 거기에는 물리적ㆍ문화적 헤게모니를 쥔 이들이 사실에서 필요한 것만 추출해 원하는 바대로 살을 입혀 전시하곤 하는, 고래의 문화제국주의적 혐의가 짙다.
아메리카 식민지 후발주자로 16세기 북미 동부 개척에 나선 영국을 가로막은 부족 가운데 하나가 버지니아주 알골킨 언어부족들이었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부족이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 부족 연합 족장의 딸이 마토아카(Matoaka, 작은 눈의 깃털이란 뜻)였고, 별명이 포카혼타스(작은 장난꾸러기)였다. 그는 활달하고 호기심 많은 소녀였다고 한다.
분쟁 와중이던 1613년 영국인들은 18세의 포카혼타스를 볼모로 납치했다. 포로 교환 및 몸값 흥정을 벌이던 1년여 사이 영국인 거주지 제임스타운의 전도사들은 포카혼타스를 기독교로 개종시켰고, ‘레베카(Rebecca)’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거래가 성사된 뒤 포카혼타스가 잔류를 선택한 사연은 그 자신도 단정지어 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볼모라고는 해도 그는 제임스타운에서 자유로웠고,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겐 많은 게 신기하고 흥미로웠을 것이다. 그는 상처한 잉글랜드 출신 개척자겸 담배 농장주 존 롤프(John Rolfe)와 1614년 4월 5일 결혼, 이듬해 1월 아들 토머스를 낳았다.
영국 지배층에게 포카혼타스와 존 롤프의 결혼은 이주ㆍ개척의 좋은 선전수단이자, 그 자체로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1616년 런던으로 여행 온 포카혼타스 부부는 귀족들의 파티에 잇달아 초대받는 등 환대를 받았다. 귀한 구경거리이기도 했을 것이다. 포카혼타스는 백인들의 질병 천연두에 감염돼 귀향 길에 숨졌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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