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나눔과나눔 등 봉사자
재작년부터 서울시와 지원 협약
가족 단절된 무연고자 대리상주
조화 국화꽃에 영정도 없는 빈소
한시간 내 모든 장례절차 마무리
유골은 ‘추모의 집’ 10년간 보관
지난달 31일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2층 유족대기실에 제사상이 차려졌다. 10㎡남짓한 대기실에 병풍과 상이 펴졌고 그 위에 사과, 배, 대추 등 단출한 음식이 올랐다. 생화와 조화가 혼재된 국화꽃까지 자리를 잡았지만 빈소에는 영정도, 유족도 없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이들은 묵묵히 제사를 준비하는 두 명의 남자와 종교단체에서 나온 8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전부였다. 제사 준비가 모두 끝나자 세 개의 위패가 나란히 상 위에 올랐다. 각기 다른 성(姓)을 가진 세 명의 고인을 향한 묵념으로 장례식이 시작됐다.
이날 치러진 장례식은 최모(49)씨, 전모(66)씨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신생아를 기리기 위한 자리였다. 생전에 혈연으로 얽히지도 않았고, 일면식이 있던 관계도 아니었다. 이들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무연고자’. 가족과 연락이 단절됐거나, 피붙이들로부터 외면 받은 고인들을 위해, 역시 이들과 일면식도 없던 박진옥(45)씨와 부용구(45)씨가 대리상주를 자처했다. 부씨는 “무연고자라도 가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세 명의 고인 모두 가족들이 시신을 위임해 와 대신 장례를 치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대리상주가 된 이들은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의 사무국장과 전략사업팀장이다. 201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장례지원을 시작으로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장례와 추모행사를 진행해왔다. 그러다가 2015년 서울시와 ‘무연고사망자장례 지원사업 협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무연고자 장례식도 치르고 있다. 박 사무국장은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가 장례절차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시는 길에 소박한 상이라도 차려드려야겠다고 결심했다”며 “이때부터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활동 초기에 사회반응은 냉담했다. 박 사무국장은 “처음 무연고자 장례를 치를 때는 일반장례식장에 사정사정을 해서 시신안치실 냉동고 앞에서 장례를 지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서울시, 서울시립승화원과 업무협약을 맺은 뒤에야 시신 화장 시간에 짬을 내 유족대기실에서 간소하게나마 마음 놓고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됐다.
장소를 확보했어도 3일장을 지낼 만큼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무연고자 장례식은 운구를 시작으로, 화장, 묵념, 제배, 추문ㆍ조사낭독, 종교행사, 수골ㆍ유골운반 등 모든 절차가 한 시간 안에 끝난다. 제례 절차와 제사상뿐만 아니라 고인의 의관 역시 단출하다. 흔한 수의도 입지 못한다. 무연고자들은 구청에 사망신고가 접수된 후부터 가족을 찾고 시신위임 답변을 듣기까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의 시간이 소요돼 고인을 영하의 온도로 꽁꽁 얼린다. 이 때문에 팔, 다리가 모두 얼어붙어 수의를 입힐 수가 없다.
이날 장례식을 마친 대리상주들과 자원봉사자들은 고인들의 유골을 작은 함에 담은 뒤 그 위에 각각 ‘2017-94’‘2017-95’ 순으로 숫자를 썼다. 올해에만 95명의 무연고자 장례가 치러졌다는 의미다. 유골은 경기 파주시 용미리에 위치한 ‘무연고 추모의 집’으로 보내져 10년간 보관된다.
유골을 차에 실어 떠나 보낸 뒤 승화원 뒤편 유택동산에서 위패를 태우는 것으로 이날의 장례식은 모두 끝났다. 위패를 태운 뒤 박 사무국장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안녕’이라는 평범한 인사마저 그리웠을 고인에게 (중략) 부디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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