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유동성 위기 겪는 기업 대상
공장 등 자산매입해 저리로 재임대
2개 기업 법정관리 졸업 등
총 9개 기업 도산 위기서 벗어나
부산의 한 조선 기자재 업체 A사는 지난해 경기 침체와 일감 감소로 도산 위기에 몰렸다. 몇 년 전 빚을 내 대규모 생산 설비 투자를 한 게 화근이었다. 적자가 이어지며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부채/자기자본)은 353%까지 치솟았다. 금융권의 추가대출은 언감생심이었고 직원 50여명의 생계도 위태로워졌다.
그러나 A사는 최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자산매입 후 임대’(Sales & Lease Back) 프로그램을 통해 위기에서 탈출했다. 공장을 캠코에 193억원에 매각하고 5년간 재임대하면서 부채비율을 대폭 줄이고 운영자금까지 확보한 것이다. A사의 부채 비율은 올해 말 171%, 5년 후에는 125%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임대한 공장의 임대료율도 연 4% 중반으로, 민간에서 임대할 경우(연 7~8%)보다 저렴하다. A사는 하루 빨리 경영을 정상화한 뒤 우선매수권을 통해 공장을 되찾아올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을 비롯 제조업 구조조정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가운데 캠코의 ‘자산매입 후 임대’ 프로그램이 위기에 빠진 굴뚝 기업들의 새로운 활로가 되고 있다. 잠시라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 대출을 회수해버리는 금융기관들과 달리 이 프로그램은 오히려 자산을 매입해 유동성을 지원하는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산매입 후 임대 프로그램은 2015년 캠코가 기업 재무구조 개선을 돕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일시적인 어려움으로 기업이 도산하는 것을 막고 유동성 공급을 통해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은 ▦부채비율 감소 ▦매각 자산의 재임차를 통한 안정적인 사업기반 유지 ▦운전자금 확보에 따른 유동성 위기 해결 등 경영정상화를 꾀할 수 있다. 이미 이 제도에 힘입어 9개 기업이 도산 위기에서 탈출했고, 이 중 2개 기업은 법정관리에서도 벗어났다.
지난해 12월에는 보다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위해 관련 법도 개정, 지원 혜택이 더 커졌다. 산업단지 내 사업체의 경우 인수 및 임대를 할 수 없도록 한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이를 가능하도록 한 것. 이에 따라 전체 공장의 35%를 차지하는 산업단지 내 6만2,000여 사업체가 프로그램 지원 대상이 됐다. 또 자산을 양도하면서 차익에 대한 법인세 납부를 미룰 수 있도록 ‘조세특례제한법시행령’도 바꿨다. 법안 개정 이후 첫 수혜 대상이 바로 A사다.
캠코는 지원을 더 확대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A사를 포함 10개 기업에 1,610억원을 지원한 데 이어 올해는 최대 5,000억원 규모로 이를 늘릴 계획이다. 대기업도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 문창용 캠코 사장은 “경기침체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업단지 입주기업들을 돕기 위한 유동성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며 “자산매입 과정에서 기업의 취・등록세 등 거래세 부담을 낮추기 위한 법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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