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곳 중 1곳은 52시간 초과 근무
평일 연장근로 사업체 22% 가산임금 미지급
국내 한 유명 전자회사 인사팀에서 근무하는 장모(35)씨의 달력엔 평일 저녁 약속이 없다. 밤 10시 이전에 퇴근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탓이다. 특히 본사 임직원 수천 여명의 고과 평가와 인사 시즌이 되면 매일 자정 가까이에 퇴근하는 건 물론 휴일 근무도 일상이 된다. 장씨는 “정시 퇴근해 친구들을 만나고 운동을 하는 평범한 일상을 누려본 적이 1년에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사업체 10곳 중 6곳의 근로자들은 주당 40시간을 초과해 근무했으며, 특히 10곳 중 1곳의 근로자들은 주당 52시간을 넘는 초과 근무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의 국회 논의가 불발되면서, 이들은 아무런 법적 보호도 없이 또다시 장시간 근로에 방치되게 됐다.
3일 고용노동부가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2016 근로시간 운영 실태조사’에 따르면 5인 이상 비농림어업 사업체 1,565개(조사 대상 1,570개) 중 주당 근로시간 40시간(월 178시간)을 지키는 사업체는 10곳 중 4곳(41.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의 월 평균 근로시간은 191.7시간이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월 201.5시간으로 가장 길었고 운수업(195.2시간)과 문화산업(194.5시간)이 뒤를 이었다. 규모까지 고려하면 300인 이상의 운수업 사업체가 215시간으로 가장 오래 일하는 것으로 기록됐다.
특히 조사 대상의 9.6%인 151곳은 근로자들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52시간(월 231시간)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행정해석상 휴일 근무(16시간)를 포함해 주 68시간까지 근무가 허용되지만 평일 근무만 하는 사업체들도 조사에 참여한 점을 감안하면 일부 근로자들은 불법적인 초과 근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다.
초과근무에 대한 정당한 대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평일 연장근로를 실시하는 업체는 전체의 43.5%인 683개소로 조사됐지만, 이들 5개 사업체 중 1곳(21.8%)은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임금(통상임금의 50% 이상)을 지급하지 않았다. 특히 부동산업의 경우 가산임금 지급률은 38.1%에 불과했다. 휴일근로를 실시하는 사업체는 전체의 32.9%였으며, 이중 가산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업체는 23.6%였다.
법정공휴일에 제대로 쉬지 못하는 기업도 많았다. 조사 대상의 36.7%의 사업체는 전체 법정공휴일 중 일부만 쉬거나 아예 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정공휴일은 관공서의 휴일로 일반 사업체는 노사간 단체협약을 통해 휴일로 지정한다. 조사 대상 사업체의 평균 연차휴가 부여 일수는 14.7일이었지만 연차 휴가의 평균 사용 일수는 9.1일에 그쳤다. 특히 근로자 5~29인의 영세한 사업체 근로자의 경우 연차 휴가를 평균 8.0일 쓰는데 그쳤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나마 많지 않은 휴일 및 휴가를 모두 소진하지 않아 장시간 근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재계는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에 대해 특별연장근로 8시간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근로시간 단축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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