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STX조선 사례 참고, ‘원리금 상환 요구’ 내부 검토 중
산은, ‘상환 불가’ 입장… “법원 가도 달라지는 건 없다”
대우조선해양 회생을 위해 정부로부터 회사채 3,900억원의 50% 출자전환 요청을 받은 국민연금이 대우조선에 회사채 원리금 상환을 요구할 지 검토 중이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국민 노후자산으로 부실 기업을 살린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원리금 상환을 요구하는 순간, 대우조선은 자율 구조조정에 실패해 곧바로 초단기 법정관리(P플랜)로 들어가야 한다. 채권단의 고통 분담으로 대우조선을 살리겠다는 정부 구상이 점점 꼬이는 모양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1일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조선 현황을 담은 일부 자료를 받아 정부의 채무재조정 요구안에 대한 국민연금 입장을 정하기 위한 실무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은 대우조선에 회사채 원리금 상환을 정상적으로 요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자료를 뒤늦게 받아 분석 중이라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과거 이런 사례가 없어 (원리금 상환요구를 포함한) 여러 방안을 살펴보고 있는 건 맞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국민연금이 STX조선해양의 자율협약 당시 회사채 원리금을 상환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STX조선해양은 채권단 동의를 얻어 2013년 4월 채권단의 공동 관리를 받는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하지만 당시 회사채는 채무재조정 대상에서 빠져 채권단 지원 자금 가운데 9,950억원이 회사채 상환에 쓰였다. 국민연금은 이번 채무재조정 대상인 대우조선 회사채 3,900억원이 모두 분식회계가 이뤄진 2012년과 2014년에 발행된 만큼 채무재조정에서 빠질 명분도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대우조선에 원리금 상환을 요청해도 현실적으로 당장 받을 길이 없다는 게 문제다. 국민연금이 원리금 상환을 요구하는 순간, 정부가 신규 자금 지원의 조건으로 내건 ‘자율적’ 구조조정 요건이 깨져 대우조선은 곧바로 P플랜에 들어가게 된다. 국민연금이 P플랜 돌입에도 불구, 회사채 투자금을 건지려면 회사채가 분식회계 기간에 발행됐다는 점을 부각시켜 대우조선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방법 밖에 없다. 하지만 소송에서 이긴다 해도 대우조선의 자금 사정상 국민연금이 현재의 채무재조정안에 참여할 때보다 손실을 줄인다는 보장은 없다. 다른 채권단이 소송전에 줄줄이 합류하면 국민연금이 받을 수 있는 돈은 더 쪼그라든다.
산은은 국민연금의 원리금 상환 요구에 “절대 반대”라는 입장이다. 산은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채무재조정에 참여하는 것 외에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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