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시 톰프슨(22ㆍ미국)의 발목을 잡은 ‘시청자 제보 벌타’가 논란이 되고 있다.
톰프슨은 3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 컨트리클럽 다이나 쇼어 코스(파72ㆍ6,763야드)에서 열린 ANA 인스퍼레이션(총상금 270만 달러) 4라운드에서 12번 홀까지 3타 차 선두를 달리고 있었는데 13번 홀로 향하는 길에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전날 3라운드 17번 홀에서 마크를 했던 지점에서 약 2.5㎝ 정도 홀에 가까운 곳에 공을 놓고 퍼트를 했다는 TV 시청자 제보가 들어온 것. 결국 공을 마크한 지점에 정확히 놓지 않고 홀 쪽에 가깝게 놨다는 이유로 2벌타가 부과됐고, 또 잘못된 스코어카드를 제출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2벌타가 추가됐다. 순식간에 4타를 잃게 된 톰프슨은 3타 차 단독 선두에서 1위에 2타 뒤진 5위로 내려앉았다. 게다가 이날 12번 홀(파4) 보기로 한 타를 잃고 나오면서 4벌타 이야기를 들었으니 한꺼번에 5타를 잃은 셈이 됐다. 2014년 이 대회 우승 이후 3년 만에 패권 탈환을 눈앞에 뒀던 톰프슨은 울먹였고, 결국 연장접전 끝에 우승컵을 유소연(27ㆍ메디힐)에게 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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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프슨의 4벌타는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규정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골프 규칙 6-6에 보면 '경기자가 스코어 카드 제출 전에 규칙 위반을 몰랐을 경우는 경기 실격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적용규칙에 정해진 벌을 받고 경기자가 규칙을 위반한 각 홀에 2벌타를 추가한다'고 돼 있다. 또 20-7에는 '경기자가 오소(잘못된 장소)에서 스트로크한 경우 그는 해당하는 규칙에 의하여 2벌타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기 후 톰프슨은 “당시에는 전혀 그런 상황을 인식하지 못했다. 많은 팬이 응원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런 과정을 통해 또 배우면서 더 발전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톰프슨에게 규정 위반 사실을 전한 LPGA 투어 경기위원 수 위터스는 “오늘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다”고 탄식했다.
한편 골프는 축구, 야구 등 타 종목과는 달리 관중을 포함해 TV시청자 등 경기 참가자가 아닌 제3자의 제보를 받아들여 왔고, 톰프슨처럼 ‘황당한’ 벌타로 무너진 사례가 잇따랐다.
최운정(27ㆍ볼빅)은 2014년 8월 캐나다 퍼시픽 오픈 2라운드 도중 벌타 판정에 불복해 아예 기권했다. 당시 10번 홀 그린에서 퍼트 지점을 잘못 잡아 경기위원으로부터 2벌타를 받은 데 따른 불만이었다. 골프채널은 "최운정은 마크에서 약 1인치 정도 왼쪽에 공을 놓고 퍼트를 했고 이것이 TV 시청자 제보로 연결되면서 경기 종료 후 2벌타 판정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장수연(23ㆍ롯데)은 2010년 아마추어 고교생 신분으로 KLPGA 투어 현대건설 서울경제오픈에 출전해 우승했다. 하지만 우승 확정 후 스코어카드를 들고 접수처로 간 장수연에게 경기위원회에서 이해할 수 없는 규정 위반으로 2벌타를 부여했다. 15번홀에서 그린을 향해 어프로치 샷을 하던 순간 캐디를 맡았던 부친이 딸, 장수연의 캐디백을 홀 방향으로 눕혀놓았다고 문제를 삼았던 것. 한마디로 ‘퍼팅 라이’를 읽는데 도움을 줬다는 의미다. 이 역시 TV시청자가 제보를 했고, 경기위원들이 ‘라인 개선’으로 2벌타 판정을 내린 것이다. 결국 장수연은 세리머니까지 했던 우승컵을 반납해야 했고, 다시 우승하기까지 무려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2013년 코오롱 제56회 한국오픈에서도 17번홀(파3)까지 단독 선두를 달리던 김형태(36)가 해저드 구역 내에서 클럽을 지면에 댔다는 시청자 제보로 2벌타를 받아 우승컵을 내준 바 있다. 먼저 경기를 마친 호주 출신 선수들이 클럽 하우스에서 TV로 중계를 보다 경기위원회에 제보하면서 빚어졌다.
공교롭게 시청자 제보로 가장 많은 벌타를 받은 이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2ㆍ미국)다. 우즈는 2013년 마스터스에서도 드롭 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 2벌타를 받았지만 스코어카드 오기로 실격처리 되지 않았다. 우즈는 "HDTV가 나오면서 시청자 제보가 더 많아졌다"며 "TV의 영향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되니 구체적 규칙을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기억을 떠올린 우즈는 이번에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시청자들이 경기 위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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