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이 거추장스러워서 모자 쓰고 다녔더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아 그냥 맨 머리 영상을 찍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어요”
성지인(24)씨는 2년 전 유방암 투병을 기점으로 대인 관계를 정리했다. 항암치료를 하며 머리를 밀었더니 평소 교류가 없던 사람들까지 갑자기 안부를 물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성씨는 ‘내 사람들이나 챙기자’는 생각에 형식적으로 교류하던 사람들과는 연락을 줄여나갔다.
최근 2030 암환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04년 인구 10만명당 43.1명에 불과했던 25~29세 사이의 암 환자 비율은 10년이 지난 2014년 75명으로 1.74배나 껑충 뛰었다. 서구화된 식사, 진단 기술의 발달 등의 요인이 맞물린 결과다. 특히 유방암의 경우 20대 여성이 50대에 비해 발병 위험도가 2.4배 높다는 연구결과(2015년 한국유방암학회)도 있다. 그만큼 암은 청년들에게 흔한 질병이 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암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성씨의 경우처럼 젊은 암환자들 상당수가 투병과 동시에 구설에 오르는 고초까지 감내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젊은 사람이…” 편견에 멍드는 청년 암환자들
청년 암 환자들은 ‘젊은 사람이 몸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라는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호소한다. 유방암 3기 판정을 받고 지난해까지 투병생활을 한 장가혜(가명∙32)씨는 환우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읽고 속이 상했다. 한 환우에게 같은 병실의 노인이 몇 기인지 묻더니 “나는 관리를 잘해서 1기인데 얼마나 관리 안 했으면 젊은 사람이 3기냐”고 핀잔을 줬다는 것. 장씨는 “술을 안 마시고 담배를 안 펴도 걸리는 게 암인데 같은 처지인 사람조차 저렇게 생각한다는 게 황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투병 사실을 먼저 밝히길 꺼리는 암 환자들도 있다. 신혼 2개월 무렵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았던 한희정(가명∙31)씨는 “어른들 모이는 자리에 잘 안 간다. 시부모님을 제외한 시댁 식구들이 투병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라며 “이 나이에 암에 걸렸었단 말은 차마 못하겠더라”고 속내를 밝혔다.
친구 관계부터 직장까지...고민 종합세트
항암치료를 하며 다시 일상에 복귀할 준비를 하던 청년 암 환자들은 주변인들의 반응에 큰상처를 받는다. 항암 치료를 받아 살이 빠진 성 씨는 친구가 그의 마른 모습을 부러워하며 무심코 “네가 나중에 머리 기르고 예쁘게 차려 입은 모습을 보면 내가 자극 받을 것 같아”라고 한 말에 충격을 받았다. 성씨는 “처음엔 나쁜 의도로 말한 게 아니겠지 싶다가도 계속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고 말했다.
한씨는 예전 직장 동료에게 암 투병 사실을 귀띔했다가 전 직장에 소문이 나면서 연락처도 바꿨다. 그는 “전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내가 ‘곧 죽을 사람’이 돼 있었다”며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고 말했다.
완치 후 사회 복귀를 한 다음에도 이들의 고민은 계속된다. 암 발병 때와 다름없는 업무 강도와 동료들의 시선 등으로 직장 생활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환우 커뮤니티에서도 암 투병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암 투병 사실이 채용에 영향을 줄까 걱정하기도 한다.
“암 환자들의 경력단절 대처법 등 제도적 보완 필요”
전문가들은 암의 특성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환자의 입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삼성서울병원 암 교육센터 조주희 교수는 “환우를 약자로 여기기보단 이들의 사회적 가치∙잠재력을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이들이 일상으로 복귀하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며 “암 치료에 대한 정보, 경력 단절 시 대처법 같은 기초적인 정보조차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안내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환자의 용기와 주변의 지지도 중요하다. 서울대병원 암정보교육센터의 상담자원봉사자 주광재(65)씨는 “암은 혼자 감당하기에 버거운 병”이라며 “본인의 치부라고 생각 말고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지지를 받으면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진은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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