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끝판왕’ 오승환(35ㆍ세인트루이스)이 개막전부터 동점홈런을 얻어맞고 블론세이브로 자존심을 구겼다. 하지만 팀이 끝내기안타로 승리하면서 한국인 두 번째 개막전 승리투수라는 쑥스러운 훈장을 달았다.
오승환은 3일(한국시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린 디펜딩챔피언 시카고 컵스와 개막 첫 경기에서 3-0으로 앞선 9회초 아웃카운트 2개를 남겨 놓고 윌슨 콘트레라스에게 통한의 3점포를 허용했다. 개막전의 부담 때문인지 제구는 다소 흔들렸지만 1점 차 박빙의 리드에서 마운드에 올라 탈삼진 2개를 곁들이며 비교적 호투하다가 한 방으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오승환은 1-0으로 앞선 8회초 1사 1ㆍ2루에서 선발 카를로스 마르티네스를 구원 등판했다. 첫 타자 카일 슈와버를 풀 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으로 내보낸 오승환은 1사 만루에서 지난해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 크리스 브라이언트를 짧은 우익수 플라이로 처리해 실점 위기를 넘겼다. 2사 만루에서도 다시 앤서니 리조를 우익수 플라이로 요리하며 불을 껐다. 타선도 8회말 2점을 보태 3-0을 만들며 오승환의 개막전 세이브는 다 잡힌 듯 보였다. 그러나 9회초 오승환은 첫 타자 벤 조브리스트를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낸 뒤 1사 후 제이슨 헤이워드의 땅볼을 잡은 1루수 맷 카펜터의 실책성 수비로 다시 1ㆍ2루 고비를 맞이했다. 공식 기록은 내야안타였다. 흔들린 오승환은 윌슨 콘트레라스에게 볼 카운트 1볼-2스트라이크에서 슬라이더를 던지다가 좌월 3점 홈런을 내주고 고개를 떨궜다.
오승환은 나머지 두 타자를 범타로 잡고 이닝을 끝냈고, 세인트루이스는 9회 말 2사 만루에서 터진 랜덜 그리척의 좌중간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4-3으로 힘겨운 승리를 거뒀다. 메이저리그 개막전에서 한국인이 승리투수가 된 것은 2001년 박찬호(당시 LA 다저스)에 이어 2번째지만 자랑하기 힘든 타이틀이 됐다.
한편 ‘홈런 치는 에이스’ 매디슨 범가너(28ㆍ샌프란시스코)는 메이저리그 개막전에서 멀티홈런(1경기 2홈런 이상)을 친 최초의 투수가 됐다. 범가너는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 필드에서 치러진 애리조나와의 개막전에 선발 등판해 5회와 7회 연타석 솔로홈런을 쏘아 올렸다. 메이저리그 기록 사이트인 베이스볼레퍼런스에 따르면, 1913년 이후 한 경기에서 투수가 멀티 홈런을 친 사례는 이날까지 총 67번 나왔는데 개막전에선 범가너가 처음이다.
현역 투수 중 가장 많은 홈런을 친 범가너는 통산 홈런도 16개로 늘렸다. 그의 한 시즌 최다 홈런은 2015년 5개다. 특히 애리조나 선발 잭 그레인키에게서 빼앗은 첫 홈런의 타구 속도는 무려 시속 181㎞로 측정됐다. 두 번째 홈런은 좌완 앤드루 채핀에게서 뽑았다. 범가너는 그레인키의 시속 148㎞의 포심 패스트볼을 펜스 너머로 보냈다. 채핀의 공도 148㎞의 빠른 볼이었다.
범가너는 3-0으로 앞선 6회 1사까지 안타와 볼넷을 하나도 주지 않는 퍼펙트 투구를 펼치다가 제프 매티스에게 3루타를 맞은 이후 3실점 해 동점을 허용했다. 그러나 7회 자신의 타석에서 큼지막한 좌월 솔로 아치로 결자해지했다. 타석에서 홈런 두 방, 마운드에서 7이닝 3실점한 범가너의 원맨쇼에도 불구하고 애리조나는 4-5로 패색이 짙던 9회 말 2사 후 대니얼 데스칼소의 중전 적시타로 5-5, 동점을 이룬 뒤 이어진 2ㆍ3루에서 크리스 오윙스가 끝내기 우전 안타를 때려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탬파베이는 뉴욕 양키스를 7-3으로 제압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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