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명동에서 노점실명제를 실시한 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억세기로 유명한 명동 노점상들을 어떻게 설득했느냐는 질문이 상당수였다.
비결이랄 것도 없지만 그 방법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노점을 무조건 내치기보다는 제도권 내 경제활동 주체로 참여시키는 게 가로질서 확립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노점실명제는 규격화한 노점 한 개만 정해진 위치에 실명으로 운영하도록 점용허가를 내주는 대신 위생과 안전, 질서유지 등 법 의무를 부여한다. 노점상이 더 이상 불법점유자가 아닌 제도권 내에서 영업하는 당당한 사장님이 되는 것이다.
그간 많은 지자체가 노점실명제를 실시하고자 했으나 노점상과 시장상인 간 이해가 충돌하며 대부분 실패했다. 중구 역시 초반 명동의 두 이해당사자를 설득하는 데 큰 애를 먹었다. 하지만 상권활성화를 위해 상인과 노점상이 상생해야 한다는 점을 적극 홍보했다. 명동의 성공사례를 토대로 동대문시장과 중앙시장에서도 노점실명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다시 남대문시장에서 벽에 부딪쳤다. 노점을 위한 정책인데도 노점들은 무언가를 더 얻기 위해 실명제 참여를 조건으로 영업시간 연장을 요구했다. 보다 못한 시장 상인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중구도 조건 없는 실명제 수용을 요구하며 노점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후 신청자 일부를 대상으로 노점실명제가 시행됐으나 실명제 불참 노점은 오히려 영업종료 후 노점 매대를 방치하며 실력행사에 나섰고, 시장 상인들은 집단행동으로 맞섰다. 일촉즉발 상황에서 중구는 양측 요구를 조율하려 했지만 워낙 입장 차이가 커 합의를 끌어내기는 어려웠다. 무단 방치 매대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구는 시장상인과 노점상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지난해 11월 ‘남대문시장 활성화협의회’를 구성해 실명제 시행을 포함한 시장의 발전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쇠퇴해가는 남대문시장을 살리는 방법은 상생 밖에 없다는 점을 서로 확인하면서 갈등은 점차 봉합됐다. 실명제 거부 노점들이 하나 둘씩 실명제 참여의사를 밝혔고, 3월부터는 남대문시장 모든 노점으로 실명제가 확대됐다.
사회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요즘, 노점실명제 직전 남대문시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공직자 역할을 반추해본다. 공직자들은 공동체 사회에서 언제든 생길 수 있는 갈등을 해소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갈등 해소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서로의 차이를 인내하는 관용을 기반으로 쟁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타협 또는 합의 가능한 대안 모색 등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편가르기는 물론 기계적인 중립도 옳지 않다. 행정과 입법, 사법부의 대국민 서비스가 워낙 세분화한 만큼 상황에 따른 대처도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바뀌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수년 전 주민들과 지하상가 상인들이 보행권과 생존권을 놓고 명동역 앞 횡단보도 설치 문제로 충돌했을 때 당초 횡단보도를 설치하려던 위치를 약간 이동시키는 중재를 이끌어낸 것만 봐도 갈등 해소에 공직자 의지가 크게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대문시장 노점실명제처럼 서로가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나된 대한민국을 꿈꿔 본다.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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