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상이 외국을 방문하면 각각의 일정과 의전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 일정에도, 그를 맞이하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속내가 감지된다. 겉으로는 동맹국 일본 수준의 영접을 하는 것 같지만, 구석구석에서 중국을 홀대하고 압박하는 분위기가 묻어난다.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동등한 지위인 ‘신형대국관계’를 추구하는 중국은 시 주석이 6, 7일 트럼프 대통령 소유인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휴양지를 방문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 2월 방미 기간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그 곳으로 초청됐다는 점과 비교하며, 미국이 시 주석을 동맹국 정상과 동격으로 극진히 챙긴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소유 휴양지를 방문한다는 점만 같을 뿐 플로리다에서의 세세한 일정은 통상ㆍ북핵ㆍ남중국 문제에서 시 주석을 강하게 압박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가 그대로 읽힌다. 아베 총리는 2월9일 워싱턴에 도착, 이튿날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미 대통령 전용기로 마라라고로 날아갔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마라라고에서 2박3일 숙식을 같이 했고 개인적 친분을 다진다는 의미로 골프도 함께 즐겼다.
반면 시 주석은 워싱턴 백악관에는 오지도 못한다. 대선 후보 시절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을 겨냥해 말했던 수준의 의전을 연상시킨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오면 만나겠다. 다만 햄버거를 먹으면서 협상을 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중국과 같은 경쟁관계 국가의 정상에 대한 국빈만찬 관행도 비판했다.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 지도자들이 방문한다면, 일찍이 보지 못했던 국빈만찬을 제공할 것이다. 비용이 많이 드는 만찬은 잊어야 한다. 회의 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시 주석과 일행은 6일 만찬과 정상회담 때에만 마라라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다. 또한 아베 총리와는 달리 마라라고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진 ‘오 팜 비치’ 리조트에 묵어야 한다. 공직자 청렴을 강조하는 시 주석이 고사한 탓에 성사되지 못했다는 설명도 있지만, 골프 회동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교분을 쌓을 기회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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