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은 ‘피겨 여왕’ 김연아(27)의 은퇴 이후 짙은 먹구름이 끼었다. ‘연아 키즈’로 주목 받은 기대주들이 하나 둘씩 등장했지만 시니어 무대에서 늘 세계의 높은 벽에 부딪혔다. 최악의 경우 자칫 안방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우리 선수가 한 명도 출전하지 못하는 불상사도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침체기에 빠진 여자 싱글을 최다빈(17ㆍ수리고)이 구했다. 2016~17시즌 초반 부진 탓에 스포트라이트에서 밀려났던 최다빈이 2연속 ‘대타 홈런’을 치며 한 시즌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는 지난 1일(한국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끝난 2016~17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팅에서 128.45점을 받아 쇼트프로그램(62.66점) 점수를 합해 총점 191.11점으로 종합 10위에 올랐다. 한국 여자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90점대 점수를 받은 것은 김연아 이후 최다빈이 처음이다.
특히 올해 세계선수권대회는 김연아 없이 처음 치르는 올림픽 예선이었는데, 최다빈이 여자 싱글에서 10위를 차지하며 한국은 여자 싱글 티켓 2장을 확보했다. 한국 여자 싱글은 2010 밴쿠버 올림픽과 2014 소치 올림픽 당시 김연아가 직전 해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면서 각각 2장과 3장의 출전권을 땄다.
최다빈의 2016~17시즌은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 시즌이다. 초반 시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부진했던 그는 2월 4대륙 선수권대회를 2주 앞두고 쇼트프로그램 음악을 교체하는 결단을 내렸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4대륙 대회에서 쇼트프로그램(61.62점), 프리스케이팅(120.79점), 총점(182.41점) 모두 자신의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인 최고점을 찍었다. 이어 발목을 다친 박소연(단국대)을 대신해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 나선 최다빈은 4대륙 대회보다 높은 총점 187.54점을 받고 한국 여자 피겨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또한 아시안게임에 함께 출전했던 동갑내기 김나현(과천고)의 부상 상태가 심해져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넘겨 받았고, 친구 대신 무거운 짐을 짊어져 자신의 ISU 공인 최고점을 190점대로 끌어 올렸다. 이번 대회 전 “(김)나현이와 함께 평창 올림픽에 나갈 수 있도록 출전티켓 2장을 따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최다빈은 평창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7월 이후 국내 선발전을 거쳐야 하지만 현재 상승세라면 가볍게 통과할 것으로 보이며, 올림픽 무대에서도 ‘톱10’ 진입 가능성을 보였다. 그는 “올 시즌 초반 대회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와 힘들고 속상했는데 좋은 결과로 마무리하게 돼 기쁘다”며 “다음 시즌엔 평창 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부족한 점을 차근차근 채우겠다”고 말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