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엘살바도르에 거점을 둔 국제 범죄조직 ‘MS-13’이 미국 수도 워싱턴 일원의 밤을 점령했다. 이들이 세력을 급격히 확장하면서 치안 당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미 중앙정보국(CIA) 본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홈즈 런’(Holmes Run) 공원에서 연쇄 살인이 잇따르는 등 ‘MS-13’ 조직원이 저지른 강력 범죄가 급증, 시민들의 불안감도 고조되고 있다.
2일 현지 경찰에 따르면 워싱턴 남부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올들어 발생한 살인 사건 4건 중 3건이 MS-13 소행으로 추정된다. 15세 중학생이 공원에서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은 이 조직과 연계된 사실이 확인됐고, 이달 초 CIA 본부 인근 공원에서 발견된 시신 두 구도 MS-13이 저지른 범죄 피해자로 추정된다.
워싱턴 북쪽 메릴랜드주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미 MS-13이 확고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어, 배신한 조직원과 범죄 피해자 주검이 워싱턴 외곽순환도로 인근 공원에서 발견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현지 경찰이 현재 수사를 벌이고 있는 MS-13 연루 살인사건만도 수십 건이다.
엘살바도르(El Salvador)계가 1980년대 LA에서 결성해 미 전역으로 퍼진 이 조직은 최근까지만 해도 워싱턴 일원에서는 세력이 위축된 상태였다. 한꺼번에 조직원 42명이 검거되는 등 대대적인 소탕작전 덕분이었다.
일부에서는 지난해말 이후 이들의 범죄 수법이 더욱 잔인해진 점에 대해, 중남미 이민자를 경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경찰과 전문가들은 “엘살바도르 정부의 강력한 범죄소탕과 통신기술 발달이 맞물려 보이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메릴랜드주 몽고메리 경찰의 MS-13 전담수사팀장인 폴 리쿼리 경감은 “현지 경찰의 검거작전으로 조직이 와해된 엘살바도르 MS-13 본부가 워싱턴 지역의 부하들에게 활동을 강화해 범죄수익을 송금하도록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워싱턴 주변의 소외된 중남미 청소년들을 손쉽게 포섭하면서 세력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저녁 페어팩스 카운티가 마련한 설명회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치안 불안과 함께 불량ㆍ비행 청소년들의 활동에 우려를 표시했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홈즈 런’ 공원 인근에 사는 마리타 엘츠씨는 “대낮 학교에 있어야 할 청소년들이 떼지어 공원을 배회한다”며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페어팩스 경찰당국은 “우리 지역은 절대 안전하다”고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경찰이 ‘MS-13 이외에도 전국 혹은 국제조직과 연계된 6개를 포함, 총 35개 범죄조직이 페어팩스에서 활동 중’이라는 사실을 추가로 설명하자,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 나왔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