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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피워킹’ 통해 만난 우리 집 ‘빛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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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피워킹’ 통해 만난 우리 집 ‘빛나’ 이야기

입력
2017.04.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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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정의 안내견 다이어리] 1.

황현정 전 아나운서가 2009년 ‘퍼피워킹’을 하던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 ‘빛나’와 함께 앉아 미소 짓고 있다.
황현정 전 아나운서가 2009년 ‘퍼피워킹’을 하던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 ‘빛나’와 함께 앉아 미소 짓고 있다.

우연히 안내견 키우는 봉사활동 시작

하루 네 번씩 산책시키는 치열한 생활

‘빛나’ 짖는 습관 탓에 안내견 못 됐지만

배우 공유와 안내견 학교 CF도 촬영 ‘복’

2009년 여름 유난히 심한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더위만큼이나 갑갑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방송을 그만둔 직후여서 적적할 때였고 그래서인지 누군가 슬쩍 얘기한 안내견을 키우는 봉사활동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사실 좀 생뚱맞은 것이 그 때까지 개나 고양이를 키워본 적도 없거니와 동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반려견과 처음 만남을 ‘퍼피워커’(puppy walker)로 시작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네요.

퍼피워커란 안내견 학교에서 태어난 후보 강아지를 일정 기간 가정에서 맡아 키우는 봉사자를 말합니다. 봉사자는 강아지가 한 살이 될 때까지 기르면서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기에 필요한 기본 소양을 익히도록 돕습니다. 배변훈련을 하고 ‘앉아’, ‘기다려’ 를 가르치거나 규칙적으로 산책을 하며 무엇보다 사랑을 듬뿍 주는 일을 합니다.

생후 2개월 경에 집에 온 빛나가 곤히 자고 있다.
생후 2개월 경에 집에 온 빛나가 곤히 자고 있다.
빛나가 방석에 앉아 무언가를 쳐다보고 있다.
빛나가 방석에 앉아 무언가를 쳐다보고 있다.

태어난 지 2개월 된 리트리버종 ‘빛나’를 안내견 학교에서 처음 만난 날, 손바닥으로 느낀 작은 생명의 체온과 숨 쉴 때마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움직임에 완전히 당황한 채 집에 돌아왔습니다. 첫 일주일이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제가 무슨 사고를 친 것은 아닌지, 정신 없는 상태로 보냈죠.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대형견을 기르는 꿈을 꿔 봅니다. 꼬리가 풍성한 큰 개를 데리고 부부가 함께 여유롭게 산책하는 그림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완전히 착각이었습니다.

그런 우아함은 영화에나 나오는 일이더군요. 실외배변 습관을 들이기 위해 아침, 점심, 저녁, 자기 전 이렇게 하루 네 번 빛나와 산책하는 치열한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바쁘고 힘들다고 산책을 빼먹을 수 없는 것이 이 순둥이는 사람이 데리고 나갈 때까지 데리고 나갈 때까지 24시간도 오줌을 참는 녀석들이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남편이 맡아주겠다고 하는 날이면 전 “어이쿠, 고마워!”를 외치며 슬그머니 도로 앉게 마련이었지요.

산책하러 나온 빛나가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산책하러 나온 빛나가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빛나를 생각하면 한 가지 아쉬운 일이 있습니다. 퍼피워킹이 끝날 무렵 아파트 유리창 대청소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마루에서 곤히 자던 빛나가 창 밖에서 유리창 청소를 하며 줄을 타고 내려오는 아저씨와 눈이 딱 마주친 겁니다.

그 때 갑자기 빛나의 말문이 터졌다고 할까요. 한 번도 짖지 않던 아이가 놀랐는지 느닷없이 짖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당황해 허겁지겁 커튼을 치고 빛나를 진정시켰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부터 빛나가 초인종 소리에 반응을 했습니다. 얌전히 있다가도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멍” 하고 짖었죠. 그걸 고쳐 보려고 알루미늄 그릇 두 개를 준비했다가 ‘꽝’ 소리를 내서 놀라게도 해보고, 일부러 초인종을 누르고 짖지 않으면 폭풍 칭찬을 해주는 등 별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빛나 딴에는 미덥지 못한 우리 대신 자기가 이 집을 지켜야겠다고 단단히 결심을 했나 봅니다.

퍼피워킹을 마친 ‘빛나’는 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을 홍보하는 시범견으로 활동하다 은퇴했다.
퍼피워킹을 마친 ‘빛나’는 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을 홍보하는 시범견으로 활동하다 은퇴했다.

그 때문인지 빛나는 결국 안내견이 되지 못하고 학교에 남아 시범견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안내견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홍보를 하는 역할입니다. 안내견이 못돼서 아쉬웠겠지만 배우 공유와 안내견 학교 광고영상(CF)도 촬영했고 정우성, 한지민과 드라마에도 출연해 사랑을 듬뿍 받았으니 나름 복 많은 팔자라고 해야겠지요.

글·사진= 황현정 전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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