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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질문에 멈칫, 눈은 그대로인데 입만 웃어”

입력
2017.04.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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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 묘사 등 디테일에 약해

질문자 신뢰도ㆍ권한 문제 삼기도

거짓말탐지 전문가들은 "진상 규명이나 조사에 소극적이며 괜한 절차를 문제삼고, 상황을 회피하려는 행동 패턴이 강하다"고 입을 모은다. 게티이미지뱅크
거짓말탐지 전문가들은 "진상 규명이나 조사에 소극적이며 괜한 절차를 문제삼고, 상황을 회피하려는 행동 패턴이 강하다"고 입을 모은다. 게티이미지뱅크

“입술은 침묵하지만 손가락 끝은 말을 하고 있으며 모든 모공을 통해 비밀이 새 나온다. 그렇게 우리는 숨어 있는 영혼을 알아본다.”(지그문트 프로이트)

거짓말을 과학적 방법으로 추적할 수 있게 된 뒤, 미 중앙정보국(CIA) 등은 ‘온 모공을 통해 새 나오는 비밀’의 원칙을 집요하게 연구했다. 이들이 거짓말의 몸짓을 읽는 공식은 일상의 거짓말 판독에도 적용 가능하다. ‘너 밖에 없다’는 그의 말은 진심일까.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줄 알았다’는 그녀의 해명은 진실일까.

조직행동학자 잭 내셔 박사는 “전문가들은 상대방의 표정과 태도를 주의 깊게 보는 것만으로도 거짓말을 알아낼 확률이 67~80%까지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보통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때 거짓말 구성에 신경을 쏟느라 표정, 신체행동까지는 완벽히 통제를 못하기 때문이다.

저서 ‘거짓말을 읽는 완벽한 기술’(타임북스)에서 내셔 박사가 꼽는 거짓말의 단서는 ▦눈은 그대로인데 입만 웃는 인위적 미소 등 ‘비대칭 표정’ ▦말에 비해 뒤늦게 나타나는 느린 표정 ▦찰나의 공포나 충격에 비해 너무 오래 지속되는 표정연기 ▦냉온탕을 오가는 감정기복 등이다. 또 이해하기 쉬운 질문에도 멈칫하거나 “내가?” “어디 있었냐고?”를 반복하는 태도, 구체적 사실에 답하지 못하는 등 디테일에 약한 모습, 복잡한 설명은 애써 뛰어넘어 모면하려는 경향 등을 눈 여겨 보라고 조언한다.

물론 괜한 단서 하나로 거짓말을 확신했다간 선무당식 오해만 쌓이기 십상이다. 이때 참고하면 좋은 것은 CIA에서 25년 간 거짓말탐지 요원으로 뛴 필립 휴스턴이 강조하는 ‘클러스터 규칙’이다. 클러스터는 언어적ㆍ비언어적 거짓 행동 징후가 둘 이상 모인 것을 이른다.

저서 ‘거짓말의 심리학’(추수밭)에서 그가 제시하는 클러스터 구성의 신호는 무응답, 분명하게 부정하지 못하는 태도, 진술 거부, 대답 대신 무의미한 질문의 반복, 일관되지 않은 진술, 공격적이거나 시니컬한 반응, 절차에 대한 쓸데없는 문제제기 등이 있다. 느린 반응, 입이나 눈 가리기, 헛기침하기, 차림새 정돈하기 등 행동도 거짓말의 징후다.

한국인만이 보이는 거짓말 특징도 있다. 김형희 한국바디랭귀지연구소장은 “(서구인에 비해) 한국인은 거짓말을 할 때, 단답형에 가까울 정도로 말을 줄이고, 길게 말하는 자리는 피하고, 무표정을 하거나 경멸조의 표정을 짓기도 하며, ‘어~’같은 쓸데 없는 소리를 잘 낸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경고는 ‘나는 안 속는다’는 자신감을 버리라는 것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늘 속으면서도 자신감에 차있다. 예를 들면 외모만 매력적인 사람, 아는 게 없어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을 정직하다고 쉽게 믿어버리지만 이는 아무 근거도 없다는 것. 희대의 사기꾼, 사이비교주 등이 이런 어설픈 확신을 악용한다. 결국 가장 의심해야 할 것은 자신의 기분과 믿음이다.

필립 휴스턴은 이렇게 당부한다. “이제 막 골프채를 휘두르기 시작했으면서 게임을 잘하는 줄 착각해선 안 된다. 성급한 관찰로 판단하기엔, 인간은 너무나 복잡한 존재다. 명심해야 할 것은 끝없는 노력으로 진실을 아는 것이 우리의 최대 관심사라는 점이다.” 어렵지만,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려는 노력이 공동체의 안전과 공동체 그 자체를 지탱한다는 얘기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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